미리보기

2021 여우락 페스티벌 - 디렉터스 픽Director’s pick
두 개의 눈, 고고고, 물을 찾아서-Remastered
장르의 부딪힘, 경계의 넘나듦
미스터리한 변주
무토MUTO×입과손스튜디오 ‘두 개의 눈’
7월 2~3일 | 국립극장 달오름
aaaaa

사진 왼쪽부터 홍찬혁, 박훈규, 박우재, 신범호

2021 여우락 페스티벌의 시작은 ‘두 개의 눈’이다. 이는 현시대 ‘고전classic’의 수용 방법에 대한 극이다. 그것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거나 베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는 의심과 성찰의 과정이자 그를 통해 오리지널을 변주하고 재해석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두 명의 미디어 아티스트와 두 명의 뮤지션이 함께하는 예술가 집단 무토MUTO와 판소리 양식의 현대적 가능성을 타진하는 작업 공동체 입과손스튜디오는 그 ‘재해석 과정’에서 파격적 형식 파괴가 감행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두 개의 눈’은 무토MUTO의 ‘새 형식으로 음악이 주가 되는 극을 만들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으며 소재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심청가’를 선택했다. 창작자들은 ‘가련한 여성 심청’ 이미지를 걷어내고 ‘눈먼 남자 심학규의 일생’에 초점을 맞췄는데, ‘효’를 앞세우던 기존의 ‘심청가’ 서사가 담아내지 못한 행위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이때 강조되는 것은 ‘두 눈’이다. ‘감겨 있던 눈’과 ‘새롭게 뜨게 된 눈’ 말이다. ‘개안開眼’이란 그저 시력의 회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과 삶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작가들은 눈이 감겨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과 더 선명하게 마주하게 된 심학규와 그의 심적 상태를 들여다본다. 관객은 그의 ‘두 눈’을 비교해 보며 작품 속 캐릭터에 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두 개의 눈’은 오리지널보다 더 입체적인 모습으로 태어났다.
입과손스튜디오는 ‘인간 심학규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원작에 없는 세 장면을 창작해 넣었다. 각각 심학규가 부인 박 씨를 해산병으로 잃게 되는 것,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질 때 아비의 심정, 뺑덕이네와도 이별하고 혼자 남게 되는 심학규 앞에 놓인 길이다. 두 소리꾼 이승희·김소진, 고수 이향하는 이 슬픈 인간극에서 ‘소리’가 갖는 무게를 일깨워준다.
무토MUTO는 ‘의외성’과 ‘상징’을 통해 조명된 한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더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요동치는 레이저 조명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배회하는 심학규의 내면을 드러내며, 무대의 중심을 차지하는 LED 디스플레이는 ‘제사 문화’ 혹은 ‘샤머니즘’과 같은 전통의 기호적 표현이다. 무토MUTO 음악의 중핵을 형성하는 박우재의 거문고, 자연스럽게 그와 어우러지는 신범호의 일렉트로닉 사운드 또한 주목해야 할 요소다. 그들의 음률에는 ‘퓨전 국악’이나 ‘동과 서의 만남’ 같은 진부한 수사로 담을 수 없는 신묘함이 녹아들어 있다. 이번 여우락 무대에선 패션디자이너 김민주가 투입된다고 하니 2020년 초연 때보다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개의 눈’ 공연 사진
‘두개의 눈’ 공연 사진
‘두개의 눈’ 공연 사진
‘두개의 눈’ 공연 사진
‘두개의 눈’ 공연 사진
거문고 연주자 3인의 만남
심은용×황진아×박다울 ‘고고고’
7월 8일 | 국립극장 달오름
aaaaa

사진 왼쪽부터 황진아, 박다올, 심은용

한국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거문고 솔로이스트 세 사람의 독특한 무대가 펼쳐진다. 아티스트 심은용·황진아·박다울이 꾸미는 ‘고고고’가 그것이다. 세 거문고 아티스트가 이날 어떤 공연을 선보일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까지 이들이 밟아온 음악 궤적을 복기해 보며 대강의 윤곽을 그릴 수는 있을 듯하다. 따라서 이 프리뷰는 정밀한 예측이라기보다 성긴 가이드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한 사람씩 이력을 들여다보자.
심은용은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포스트 록/포스트 메탈 그룹 잠비나이 사운드의 한 축으로 자리한 연주자이자 창작자다. 그녀는 그간 잠비나이가 발표해 온 스튜디오 풀렝스full-length 앨범으로 국악기가 밴드음악의 보조장치가 아닌 핵심부에 놓일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그녀는 잠비나이와는 별개로 회화 작가 김현수와 ‘보이는 음악/들리는 그림’이라는 화두 아래 ‘잔영殘影’(2019)을 공개하며 ‘감각의 경계 확장’을 위해서도 노력해 왔다. 언제나 구획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는 심은용이 고고고에서 맡을 역할이 산술적 확률 3분의 1보다 크게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하다.
황진아는 그녀 자신의 설명처럼 ‘직관성’을 작품 활동의 모토로 삼고 있는 아티스트다. 그 말대로 커리어 내내 그녀는 이성의 필터로 환원될 수 없는 원초적 정서를 무엇보다 중요시해 왔는데, 거문고 연주집 ‘더 미들The Middle’(2017)은 ‘다양성’이라는 키워드를 배경으로 타자와 주체가 맺는 관계를 탐색한 사색적인 작품으로 기록됐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사회 네트워크 속에서 개인은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 또 어떻게 굴절되고 왜곡되는지 묻고 있다.
박다울은 누구보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방식으로 거문고를 탐구해 온 음악가이다. 그 일환으로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활용된 예측 불허 사운드를 주조해 내기도 했고, 록 연주자를 방불케 하는 충격적 퍼포먼스를 행하기도 했다. 공연장에서 그가 무아지경으로 거문고를 연주하는 장면은 한 편의 스펙터클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박다울은 단순히 감각적 충격을 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문고라는 악기의 본질과 한계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흔치 않은 예술가다. 그의 이런 철학은 전방위로 활동하는 음악가이자 여우락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역임한 원일과의 인터뷰로 확인된다.
첨언하자면 황진아와 박다울은 2020년 이미 ‘두 개의 방’이라는 프로젝트 공연으로 거문고 연주자로서의 태도와 미래에 대해 하나의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에서 발원한 저 고릿적 악기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가?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더 뻗어나갈 수 있는 음악적 영토는 존재하는가? 우리는 심은용까지 합류한 고고고를 보며 이러한 질문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원작을 재구성한다는 것
음악그룹 나무 ‘물을 찾아서-Remastered’
7월 16~17일 | 국립극장 달오름
aaaaa

사진 왼쪽부터 이아람, 황민왕, 최인환

공연 제목에 ‘리마스터remaster’가 박혀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리마스터’란 오리지널을 현재에 맞게 가공해 재구성한다는 의미다. 오는 7월 16일과 17일, 음악그룹 나무는 그룹 바람곶이 2000년대 중반 ‘바리데기 설화’에 바탕을 두고 제작한 음악극 ‘물을 찾아서’를 오늘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공연으로 관객과 도킹하게 된다.
한데 리마스터나 리메이크를 논할 때, 감상자인 우리가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시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둘째, 오리지널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작품 퀄리티를 갖춰야 한다는 것.
그럼 하나씩 검토해 보자. 먼저 시의성. 바람곶이 ‘물을 찾아서’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2007~2008년으로 이제 15년 가까이 흘렀다. 꽤 긴 시간이다. 이만하면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며, 매진 세례를 통해 검증된 바 있던 저 명작 음악극을 다시 꺼내 들어도 괜찮을 시점이 됐다고 본다.
그리고 퀄리티. 퍼포머의 면면으로 대략 가늠할 수 있다. 대금 연주자이면서 2018·2020년 여우락 음악감독을 지낸 이아람, 남해안별신굿 이수자로 다채로운 타악기를 가지고 놀며 독창적 음악 세계를 구축한 타악연주자 황민왕, 여러 재즈 밴드를 거치며 특유의 리듬 감각을 인정받은 바 있는 베이시스트 최인환. 음악그룹 나무는 대중음악과 국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특급 선수들로 짜인 트리오로, 이제 관객에게 믿음을 주는 하나의 브랜드다. 그러므로 두 번째 조건도 무난하게 충족된다.
게다가 올해 여우락 무대에서는 예전 바람곶의 음악이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채올림’ ‘나침반’ ‘바리시나위’ 등 바람곶의 대표곡들이 현대의 기준에 맞게 재해석되고, ‘양류가’ ‘따그다다’ ‘넋풀이’ 등 음악그룹 나무의 창작곡도 연주된다고 하니, 음악 마니아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공연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음악그룹 나무의 음악을 신뢰하게 된 계기는 2016년 스튜디오 작품 ‘양류가’ 덕분이다. 이 작품은 ‘즉흥연주’의 짜릿함, 프로그레시브 록을 연상케 하는 정교한 어프로치, 한국 전통음악만의 매력이 균형을 잘 이룬 분명한 수작 앨범으로, 한동안 이런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내 편견을 단번에 무너뜨려 주었다. 이들의 ‘북청아리랑’ ‘양류가’ 등은 틀림없이 재검토돼야 할 곡이라 생각한다. 창작력·테크닉·표현력을 고루 갖춘 저 실력파 그룹이 원일이 오리지널에서 보여준 탁월한 연출의 힘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게 될지. 벌써 궁금해진다.

글.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및 작가.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주로 록과 팝에 대한 글을 쓴다. 최근에는 해외 뮤지션의 전기를 쓰고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