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하나

2021 여우락 페스티벌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우재 인터뷰
선 밟은 자, 선 넘은 자
경계에 서서 바라보니 눈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올해 여우락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우재의 이야기다

전통예술은 오랜 기간 ‘그대로의 미학’을 지니고 있었다. ‘다름’은 낯선 치장이었고, ‘다름’을 지향하는 이들은 변두리로 쫓겨났다. 거문고를 연주하는 박우재의 스승은 김무길 명인과 원일이다. 그는 스승들의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김무길 명인은 한갑득 명인과 신쾌동 명인을 사사했지만 선인의 소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맵시로 재해석했다. 대학원에서 만난 원일은 국악 어법을 쓰지만 모든 것을 반대로 바꾸는 기이한 음악 행위를 보였다.
그때부터 박우재는 ‘다름’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좇았고, 스스로 변두리에 들어섰다. 이내 선을 넘어서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올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이름을 올린 박우재는 ‘선 밟은 자’들을 주목한다. 그는 주류에서 비켜난 것들에 마음이 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2021년 ‘여우樂락 페스티벌’(이하 여우락)의 핵심은 ‘선’ ‘규칙 없음’ ‘초연결’이다.

목격자로서의 ‘여우락’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로서 그동안 여우락을 어떠한 페스티벌로 인지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새로움을 꾀하고 싶고, 남들과 다르고 싶고,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젊은 연주자들에게 여우락은 가장 큰 무대였다. 새로운 꿈을 품은 음악가들에게는 첨단에 서 있는 페스티벌이라고나 할까. 여우락은 무언가를 보여주는 팀으로 가득했다. 기존에 있던 걸 잘 답습해 제품을 만드는 시장과는 조금 다른 형태였다. 늘 서고 싶은 무대였고, 올 때마다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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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우재의 첫 여우락은 언제였는지?
제2회 때 바람곶으로 처음 여우락 무대에 섰다. 당시는 축제가 막 생긴 시점이었다. 여러 아티스트를 한곳에 모으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의 준말인데, 여기서 말하는 ‘우리 음악’은 참 포괄적이다. ‘우리 음악’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어릴 때는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라고 하면 좀 오글거렸다.(웃음) 이제 와 보니 ‘우리 음악’에 많은 걸 포괄할 수 있는 것 같다. 뭉뚱그려진 듯하지만, 그러기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가장 동시대성이 묻어나는 작품이 모이는 무대가 바로 여우락이다.

‘목격자’로서 가장 인상 깊은 프로그램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한데.
10주년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전까지의 여우락은 연출적인 욕심이 있는 페스티벌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데 10주년 공연은 ‘와 이게 정말 음악 페스티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큰 공연장에서 모두가 흥겨워하고 있더라.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부터 공연장에서 여럿이 함께 호흡하는 걸 못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10주년 무대가 더 그립고 기억에 남는다.

제작자로서의 ‘여우락’

여우락의 경우 그해의 예술감독에 따라 축제 방향이 달라졌다. 올해는 무엇을 기대하기에 박우재에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의뢰했다고 생각하나?
공연 참가자로 무대에 섰을 때에는 얼핏 ‘내가 예술감독을 하는 날이 있을까?’ 생각해 본 것 같다. 어느 위치에 올랐다는 건 어느 정도 내가 연륜이 쌓였다는 것일 텐데,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이 깊었다. 그동안 나는 남들과 다르고자 하는 욕구가 컸고, 남들과 다름을 보여주는 게 두렵지 않았다. 어떤 작은 실마리를 찾아내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을 이번 여우락에서도 보여주고자 한다.

현재 여우락은 진행 상황이 어느 단계인지?
백 퍼센트! 이번 여우락은 세 가지 키워드가 중심에 있다. ‘선’ ‘규칙 없음’ ‘초연결’이다. 여우락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에 적극적이다. 그렇다 보니 ‘경계를 넘다’라는 표현을 많이 붙였는데, 나는 좀 더 도발적인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을 밟은 사람들’에 집중했다. 선을 넘어가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겠지만, 아직 자신만의 선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싶다. 대용량의 데이터가 오가는 초연결의 시대에 우리도 한번 연결돼 보면 어떨까? 그런 행위를 할 때 규칙이 없었던 내가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사실 ‘국악’이란 장르는 타 분야에 비해 연결점이 끈끈하다. 스승에게 모든 걸 전수받아 계파가 형성되는, 보수적인 음악 집단이니까.
동감한다. 항상 스승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규칙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새로워지려면 온전히 새로워야 한다. 그래서 이번 여우락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에서 ‘규칙 없음’이라는 키워드를 내걸었다.

지난해에는 갑작스러운 코로나 영향으로 여우락 진행에 많은 차질이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타개책은 좀 마련해 두었나?
아직까지 온라인 공연 계획은 없다. 우선적으로 대면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어쩌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때라고 본다. 오래전부터 별오름극장에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소규모 극장에서 좀 더 본질에 집중해 보고 싶은 열망이 강했다. 축제라고 해서 그저 다양한 스피커로 화려한 사운드를 추구하기보다는, 어쿠스틱한 느낌의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 이번 여우락에서는 가능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제한’이 있을 때 더 재밌는 예술이 발현되기도 한다.
음악적인 것도 소재가 적을 때 더 창의성이 돋아난다.

미래의 ‘여우락’

사실 여우락은 마니아들이 즐기는 축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 10년간 여우락을 둘러싼 이야기 중 하나가 ‘대중성을 확보해야 된다’는 의견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대중성을 굳이 확보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맞다. 마니아가 많이 보는 공연이라면, 마니아가 더 많아지면 된다. 여우락은 배의 앞머리가 될 수도 있고, 무언가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페스티벌로 남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중반에는 국악계가 월드뮤직과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서울아트마켓이나 월드뮤직엑스포 등에서 다양한 국악 팀을 해외에 진출시키고자 노력했다. 박우재 감독이 속한 바람곶 또한 그러한 혜택을 받았던 팀이다. 여우락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페스티벌인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힘들겠지만 앞으로 해외 진출을 유도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으리라 보는지?
여우락은 서울아트마켓이나 월드뮤직엑스포의 성격과는 좀 다르다. 하지만 뭔가 씨앗이 될 수는 있을 테다. 예컨대 이번에 무대에 서는 ‘신박서클’ 팀은 2017년 ‘74스테이지’라는 팀에서 신현필·박경소 씨가 처음 만나 그 인연으로 이번 여우락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한국남자’의 이희문과 프렐류드도 여우락에서 처음 매칭돼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여우락에서의 만남을 계기로 다양한 작업이 이뤄지면 좋겠다. 인큐베이팅 성격은 아닌 것 같고, 이미 인큐베이터를 거쳐서 자생력이 생긴 이들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은 분명히 하는 것 같다.

21세기가 지향하는 전통 공연의 패러다임은 어때야 할까?
‘성숙’이라는 단어는 바라보는 시선이 더 세분화됐을 때 사용한다. 따라서 ‘성숙한 문화’는 수많은 다양성이 더 다채로운 마니아를 만들 때 형성될 것이다. 그 중심에 여우락이 있으면 좋겠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는 시대이지 않나. 국악이 앞으로 더 독특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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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7월 2~24일
국립극장 달오름·하늘·별오름
공연문의 및 예매 02-2280-4114

글. 장혜선 월간 ‘객석’ 기자. 대학에서는 음악, 대학원에서는 연극을 공부했다.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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