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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여우락 페스티벌 - 여우락 컬래버Yeowoorak collabo
나와 일로一路, 접신과 흡혼, 공TAPE-Antinode
손실된 세계들을 엮음

협업에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어떤 예술가가 협업을 하는가? 혹은 협업의 최종 결과물이 어떠한가? 협업은 그 자체로 전례 없던 새롭고 매혹적인 무언가를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미 검증된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가.
하지만 오랜 기간 여우락 페스티벌을 지켜보면서 ‘협업 방식’에 관심을 두게 됐다. 협업은 단순히 두 세계를 결합하는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히려 일정 부분의 충돌과 손실을 감내하면서 각자의 중요한 정체성을 지켜내는 과정에 가깝다. 무대가 막을 내릴 때까지 이어지는 협상을 바라보면서 각자의 세계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게 됐는지 상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여우락 페스티벌은 자신을 기꺼이 실험하겠다는 예술가의 각오와 숱한 노고를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엮어낸다. 우리는 이 과정 속에서 잘 알고 있던 예술가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소리의 영역
강권순×송홍섭앙상블×신노이 ‘나와 일로一路
7월 4일 | 국립극장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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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송홍섭, 강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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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김보라, 하임, 이원술

‘나와 일로一路’에서는 압도적인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는 가객 강권순과 밴드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이끄는 ‘송홍섭앙상블’이 만난다. 강권순과 송홍섭은 2019년 음반 ‘지뢰: 땅의 소리’를 발매한 뒤 작년 한 해 왕성한 활동을 하며 화제를 모았다. 보통 정가와 대중음악을 접목한 시도는 대중음악의 관습을 따르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가의 박자와 호흡이 까다로운 탓이다. 그러나 강권순과 송홍섭의 협업은 달랐다. 이들은 정가를 오랜 시간 공들여 철저하게 분석하고 해석했다. 두 사람의 협업이 팽팽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각자의 세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겠다는 치열한 태도 때문이 아닐까?
이와 더불어 강권순의 제자인 가객 김보라·베이시스트 이원술·일렉트로닉 앰비언트 사운드 예술가 하임이 결성한 밴드 ‘신노이’가 함께한다. 김보라는 민요를 공부하다 강권순의 소리에 매료돼 정가의 길에 들어선 가객이다. 소화할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넓어 평단의 주목을 단숨에 받았다. 그는 누군가의 권유가 아닌 마음이 이끌려 시작한 소리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 무대에서는 강권순과 송홍섭의 ‘지뢰: 땅의 소리’ 수록곡과 2019년 발매된 ‘신노이’의 첫 앨범인 ‘뉴 패스The New Path’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두 팀이 함께한 무대에서 협연하는 시간도 마련된다.

‘두개의 눈’ 공연 사진

‘나와 일로’ 공연 사진

두 가지의 시간
이해경×강영호 ‘접신과 흡혼’
7월 11일 | 국립극장 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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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강영호, 이해경

공연예술과 사진의 공통점은 ‘시간’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공연예술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립한다면, 사진은 시간을 물화한다. ‘접신과 흡혼’은 사진을 무대 위 공연으로 끌어올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에게 묻는다. 공연예술과 사진은 어떻게 서로를 침범하며 하나가 될까? 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보유자 고 김금화 문하에 입문한 강신무이자 이수자인 이해경과 피사체의 영혼을 끌어내 박제한다고 해 ‘흡혼吸魂’의 사진작가로 불리는 강영호가 만나 특별한 무대를 선보인다.
만신 이해경이 펼치는 역동적인 굿판을 사진작가 강영호가 사진으로 포착한다. 사진은 실시간으로 무대 위 스크린에 투사되며 독특한 감각을 자아낸다. 콘서트에서 영상이나 이미지를 사용하는 시도는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 장치는 무대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기 위한 장식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해 음악을 감추거나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결과를 낳는다. 사진이 시간을 다루는 마법은 직선으로 흘러가는 공연의 시간을 어떻게 바꾸어놓을까? ‘접신과 흡혼’을 통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자. 무대 위의 이미지가 공연과 긴밀하게 결속될 때 갖는 힘은 무척 대단하다.

미래 이후
신박서클×윤석철 ‘불안한 신세계’
7월 22일 | 국립극장 달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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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신현필, 박경소, 서영도, 크리스티안 모란, 윤석철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은 최근 몇 년 동안 급속도로 바뀌었다.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위기가 이미 도래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미세먼지는 계절과 관계없이 일상화됐고, 날씨를 예측하기도 점점 어려워졌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사람과의 대면뿐만 아니라 작은 접촉마저 불쾌하거나 두려운 일이 됐다. 모든 변화는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신체의 미세한 감각마저 바꾸어버린 것 같다.
‘불안한 신세계’는 섹소포니스트 신현필, 가야금 연주자 박경소, 베이시스트 서영도, 드러머 크리스티안 모란Christian Moran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 ‘신박서클’과 재즈·팝·힙합·일렉트로닉·발라드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음악가 윤석철이 현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SF 소설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를 연상하게 만드는 공연의 제목에서도 이들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의 음악은 이미 현실이 돼버린 디스토피아를 위해 어떤 작은 돌파구를 선사할까?
코로나19 이후 어느 때보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더욱 첨예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 막막할 때마다 불안한 현대사회의 면면을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예술가들을 바라본다. 종종 그들에게서 크고 작은 단서를 발견하곤 한다. 지금 우리에게 음악은 무엇이고, 무엇이 돼야 할까? 신박서클과 윤석철이 들려주는 단서에 귀 기울여보자.

충돌과 진폭
공명×이디오테잎 ‘공TAPE-Antinode’
7월 23~24일 | 국립극장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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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송경근, 임용주, 박승원, 강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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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디알(DR), 디구루(DIGURU), 제제(ZEZE)

공명과 이디오테잎의 만남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협업하는 음악 장르의 문법이 서로 유사하거나 각 팀이 추구하는 음악 스타일이 비슷하다면 협업의 결과물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판이한 음악 세계를 다듬어온 두 팀의 만남은 그렇지 않다. 협업의 방식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형태도 짐작하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공TAPE-Antinode’는 이런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두 팀의 음악 색깔은 너무나도 다르다. 이디오테잎은 일렉트로닉과 록을 조합한 음악을 선보이며 유수의 페스티벌에서 찬사를 받은 팀이다. 이들은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강렬한 드럼을 결합하고 반복 패턴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음악의 흐름을 고조시키는 데 능수능란하다. 게다가 감정을 폭발하게 만드는 정점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음악을 처음 듣는 사람도 무리 없이 빠져들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인 음악을 선보인다. 반면, 공명은 섬세한 앙상블에 주력하는 팀이다. 곡마다 서사를 만드는 방식도 다양하다. 멤버 모두 장단을 비롯해 다양한 악기를 체득한 데다 월드뮤직의 문법을 오랜 기간 탐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다른 두 팀은 서로에게서 어떠한 가능성을 발견했을까?
흥미롭게도 공연의 부제인 ‘Antinode’는 진동 가운데 폭이 가장 큰 부분을 뜻한다. 이 단어는 협업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근본적으로 협업은 두 세계가 충돌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세계는 필연적인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큰 진폭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더 강하게 부딪혀야 한다. 그렇게 손실된 세계야말로 또 다른 새로운 가능성을 품게 된다. 나는 모든 협업이 매끄러운 결과물만을 의도하지 않길 바란다. 그런 점에서 ‘공TAPE-Antinode’는 협업의 기본 조건을 선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 성혜인 음악평론가. 전통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웹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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