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

국립극장 문화시장 ‘아트 인 마르쉐’ 현장스케치
도심 속 문화시장, 자연을 닮다
“계절을 느끼며 장을 보고, 매일 요리를 하는 맛있는 일상을 꿈꿉니다.”
- 농부시장 마르쉐 소개 글 中
입맛 돋우는 마르쉐의 아침

2021년 11월 20일, 해오름극장 앞 문화광장이 아침부터 시끌시끌하다. 광장을 둘러싼 펜스 안쪽으로는 40여 개의 ‘출점팀’이 채소와 과일 등을 매대에 진열하느라 분주하다. 한쪽에서는 음향을 체크하며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펜스 밖으로는 가지각색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로 입장 줄이 늘어섰다. 울타리를 넘나드는 저마다의 설렘이 광장을 메울 무렵인 오전 11시 국립극장의 첫 문화시장 ‘아트 인 마르쉐(Art in Marche)’가 문을 열었다.

‘아트 인 마르쉐’는 농부시장 마르쉐의 ‘마르쉐@’과 음악 공연이 결합한 복합 문화행사다. 일상에 녹아 있는 ‘시장’과 열린 예술 공간인 ‘광장’이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쉐@’은 장터라는 뜻의 프랑스어 ‘마르셰(marche)’에 장소 앞에 붙는 영어 전치사 ‘앳(at·@)’이 붙은 합성어로, 어디서나 열릴 수 있는 시장을 의미한다.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며 사용하는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한 ‘마르쉐@’은 2012년 시작을 알린 후, 현재까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건강한 교류를 위한 친환경 도심형 장터로 우뚝 서 있다.

농부·요리사·수공예가에게 직접 듣는 비하인드 스토리

장이 열리기 전 긴장감이 돌던 광장은 금세 손목에 주황색 리본을 두른 손님들로 채워졌다. ‘씨앗농부’(생산자)의 자부심으로 세워진 40여 개의 가판대는 무·상추·버섯·쌀·사과·딸기청·청귤칩·비건버터·목공품·밀랍랩 등 형형색색의 채소와 제품으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었다.

‘마르쉐@’의 장점은 역시 도심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다. 방문객은 당일 새벽에 수확한 신선한 작물을 구입함은 물론 재배 과정, 추천 레시피, 유통기한 및 보관 방법 등 제품에 얽힌 이야기 또한 생산자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 영주 특허 품종으로 별 모양 사과를 내놓은 ‘꼭지농원’ 부부 농부에게 재배 방법을 묻는다든지, 비건 식료품을 다루는 ‘원슈가데이’로부터 ‘귀엽고 새콤한 맛’의 스프레드 소스를 추천받는 재미가 그렇다.

‘농부가 된 사진가’ 이정근 농부는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 근무하며 작물 사진을 찍었어요. 퇴임 후 남양주시에서 여러 가지 무농약 작물을 기르고 있는데, 요새는 셰프 분들이 루콜라를 많이 찾는 편입니다”라며 5년 넘게 농부시장 마르쉐와 함께한 인연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시장과 함께하는 라이브 음악, ‘마음농부’의 무대

복작거리는 시장 옆으로는 토요일 나들이를 완성하는 회심의 카드가 준비돼 있다. 바로 문화광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의 주인공, ‘마음농부’들이다. 싱어송라이터 김박재재·오소영, 월드뮤직 트리오 반디(Vandi), 바이올린 연주가 탁보늬까지 이어지는 감미로운 무대는, 시장이 열린 4시간을 빈틈없이 채운다. 관객도 다양하다. 양손 가득 장바구니 쥔 채 객석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시장을 둘러보기 전 잠시 서서 공연을 즐기는 사람, 남산 방향 도로를 오르다 말고 익숙한 멜로디에 이끌린 등산객 등 문화광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상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구성이었다. 사실, 국립극장에서 문화광장을 활용한 공연이나 플리마켓을 진행한 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색다른 기류들이 더해진 것만은 확실하다. 도심 한복판에서 도심을 벗어난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국립’이라는 사회적 위치에 걸맞게 민간의 시장과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만의 특별한 영역을 만들어냈다. 방문객 역시 안전수칙을 철저히 하며 서로의 안전과 내일을 기약했다.

맨 마지막으로 공연을 마친 싱어송라이터 오소영은 이후 국립극장 인터뷰에서 “저도 시장을 둘러봤는데, 맛있어 보이는 것도 많고 정말 오랜만의 야외 공연이라 그런지 참 즐거웠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쓰레기 없는 시장’을 위하여

‘아트 인 마르쉐’가 지향하는 친환경 실천에 동참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으로 장바구니 또는 용기를 지참한 방문객에게 작은 선물을 증정하는 ‘쓰레기 없는 장보기’ 이벤트가 있다. 예를 들어, 구매 시 ‘장바구니 가져왔어요’ 하고 알려주는 사람에게 출점팀별 직접 만든 소금 약간, 홍고추 3개, 구운 달걀 1개 등을 덤으로 주는 식이다. 또, ‘다시 살림 부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집에서 쓰지 않는 종이 가방, 신문지, 보냉 가방, 은박 봉투, 플라스틱 가방 등을 이물질 없이 깨끗한 상태로 가져와 부스에 제출하면, 출점팀과 손님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이날은 ‘절창’ ‘귀토’ 등 국립극장에서 종료된 공연 포스터를 재활용해 튼튼한 종이봉투로 접어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광장 곳곳에서도 이러한 재활용 사례를 찾아볼 수 있었다. 국립극장의 지난 레퍼토리시즌 공연 현수막은 야외 객석의 그늘막으로 재탄생됐고 야외 버스킹 무대는 모두 목재 팰릿(pallet)을 재활용해 제작했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소중한 마음이 한데 모인 덕분일까. 깊어가는 가을 하늘 아래 맞이했던 ‘아트 인 마르쉐’는 한없이 소담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10년 동안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시장 일정을 받아보고, 손수 장바구니를 들고 이곳을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오늘 나의 식탁에 오르는 재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그리고 한 번쯤이라도 환경을 고민해 본 소비자의 뿌듯함이라면 그 이유로 충분하지 않을까. 지켜주고 싶은 이 소중한 장터는 오늘도 땅과 식탁을 사람으로 이으며 ‘신선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글. 염승희 문화기획자. 칼럼니스트. 지역 내에서 문화와 예술이 겹치는 지점을 탐구하고 글을 쓴다
<월간 국립극장> 구독신청 <월간 국립극장> 과월호 보기
닫기

월간지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 구독 신청

뉴스레터 구독은 홈페이지 회원 가입 시 신청 가능하며, 다양한 국립극장 소식을 함께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또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편리하게 '월간 국립극장'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회원가입 시 이메일 수신 동의 필요 (기존회원인 경우 회원정보수정 > 고객서비스 > 메일링 수신 동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