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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아프레걸’ 프리뷰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지극히 미학적인 방법
‘명색이 아프레걸’에 다가가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최초’에 환호한다. 최초라는 수식어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끝까지 홀로 걸어갔다는 의미에서 명예로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화려함에 가려진 나머지 그러한 칭호를 획득한 이들이 필연적으로 겪었을 고통이나 시련은 손쉽게 지나쳐 버리는 것 또한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일 것이다. ‘여성 최초’는 더욱이 그러하다. 어떤 분야가 되었든 이른바 ‘최초의 여성들’에게는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로 조형된 인식과 제도의 견고한 틀을 한 겹 더 깨뜨려야 하는 그야말로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 요구되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또한 다르지 않았다. 박남옥 감독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에 주목한다면, 기억을 재구성하는 우리에게도 그만큼의 책임감이 뒤따르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낸 한 인간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인격체에 대한 예의로서 조심성과 긴장감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길의 한 끝에서 광복과 전후 공간 속에서 ‘명색이 아프레걸’로 살았던,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누구보다 고달팠을 영화감독 박남옥의 삶을 극장이라는 일상 너머의 미학적인 공간을 통해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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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얼굴을 한 전근대, 그 가면을 벗기다

그렇다, 박남옥은 ‘일을 낸’ 사람이다. 19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대한민국의 영화산업이 막 발돋움하기 시작하던 그때, 영화배우 김신재의 사진을 모으며 영화를 향한 꿈을 꾸던 박남옥은 금녀의 벽을 넘은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 되었다. 1955년 작 ‘미망인’이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다. 그러나 영화를 찍는 현실이란 그녀가 남긴 말처럼 꿈같은 세계가 아닌 ‘젖먹이를 등에 업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숨 가쁜 노동 현장일 뿐이었다. 어렵사리 찍은 필름마저 여자 감독이라는 이유로 상영관을 찾지 못해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일 또한 부지기수였으니 현실이란 그저 참혹한 것이었다. 비록 삼일천하로 간판을 내렸지만 여성의 신분으로 명동 한복판에 영화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녀 특유의 뚝심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비상식의 상식들은 그러나 개인의 불행이라기보다는 광복과 전쟁으로 혼란했던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조선 왕조가 무너지고 갑작스럽게 밀려온 근대는 기성의 질서에 도전하는 여성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고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근대란 전근대의 울타리 안에 놓인, 쇼윈도 안의 사치품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프레걸은 박남옥에 국한될 수 없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이름조차 낯설지만 1950년대의 대중문화계를 장악했던 여성국극은 수많은 아프레걸이 집합한 도전과 저항의 공간이었다. 박녹주·박귀희·김소희·임춘앵·김진진·김경수·박미숙·이일심·조금앵·김연수 등 일일이 호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여성국극 배우들이 인습과 제도의 불합리와 싸우며 무대 위에서 꿈을 펼쳤다. 여성이 왕자나 장군과 같은 남성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파격 외에도 전문적인 무대예술인으로 활약하는 국극 단원들의 모습은 당대의 여성들에게 소소한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sssss 무대 화장을 한 여성국극 배우들의 모습ⓒ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

그러나 여성국극 장르가 호황을 누린 것은 불과 10년 남짓한 세월이었다. 김혜정 감독의 다큐멘터리 필름 ‘왕자가 된 소녀들’에 담긴 국극 배우들의 회한은 화려한 무대 뒤에 놓인 무거운 현실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그 회한이 영화, 라디오와 같은 새로운 매체에 의한 여성국극 장르 자체의 자연도태에서 비롯된 것인지, 국가 주도의 문화정책에서 배제된 제도적 차별 탓인지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영화감독 박남옥이 부딪쳤을 난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밖에도 가부장주의 사회의 모순 속에서 갈등을 겪다가 불과 33세에 유명을 달리한 최초의 여성 판사 황윤숙, 노동자와 여성의 인권에 대한 의식이 낮았던 조선을 자신이 유학했던 유럽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한 글로벌한 지식인이었으나 대공황과 여성 차별이라는 벽에 부딪혀 결국 스물여섯 나이에 궁핍한 삶을 마감한 한국 여성 최초의 경제학자 최영숙 등, ‘근대의 얼굴을 한 전근대’의 시대사적 맥락 속에서 아프레걸로 살다 간 인물들을 이 자리에 소환하는 이유는 음악극 ‘명색이 아프레걸’의 심층부로 들어가기 위함이다.

전쟁미망인, 규범과 일탈의 긴장 속으로

여기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해 보자. 국립극장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은 극 안에 또 다른 극이 삽입된 극중극 형식의 작품이다. 여기서 ‘또 다른 극’이란 바로 박남옥이 감독한 영화 ‘미망인’이다. 이 영화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는 주인공 이신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어긋난 사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쟁미망인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주인공은 젊은 청년 택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사내는 옛 애인에게 돌아가 버리고, 질투와 배신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결국 자신의 젊은 애인을 살해하게 된다. 전쟁 후 급격히 증가한 전쟁미망인은 남편의 실종과 죽음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제활동 경험이 없는 이들은 행상이나 삯바느질과 같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 없는 단순 노동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전쟁미망인에게 연애란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황된 사랑 타령일 뿐이었다. 영화 ‘미망인’의 중심축을 이루는 전쟁미망인의 사랑이란 그러므로 당대에는 비현실이거나 혹은 도발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탈의 서사는 ‘명색이 아프레걸’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관극 포인트라 할 수 있다.

sssss 영화 ‘미망인’ 속의 이신자(왼쪽)와 택(오른쪽)ⓒ한국영상자료원

그 이유에 대해 밝히자면, 극중극 속의 미망인 이신자는 “레디, 액션”을 외치고 있는 박남옥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여성의 중첩되는 이미지는 여성을 속박하는 규범과 그 규범을 벗어나려는 일탈의 욕망이 구심력과 원심력으로서 팽팽하게 맞서는 지점을 공유하고 있다. 비록 방향성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자는 청년과의 만남이라는 사건으로, 그리고 후자는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기성의 질서가 요구하는 규범화된 여성상으로부터 탈피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종사하는 열부의 상은 여기서 잠시 기각된다. 박남옥은 여성 또한 자식이나 남편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주체로서의 삶을 주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를 통해,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삶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자신의 딸을 향해 “쟤, 송서방네가 이사 가면 그리로 보낼까, 나도 귀찮어”라는 영화 속 이신자의 대사는 어쩌면 감독 본인의 내밀한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박남옥 감독의 삶을 대변하는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 거칠게 담배를 태우는 남성적인 모습과 아이를 업고 있는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은 규범과 일탈의 구심력과 원심력 속에서 투쟁하고 타협의 지점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sssss 동경 아세아영화제에서 미후네 도시로·김진규·박남옥(왼쪽), 딸을 업고 있는 박남옥(오른쪽) 사진제공. 이경주

박남옥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어서도 아니고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이라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꿈을 가져본 자라면 누구나 겪었을 공고한 사회의 벽과 그에 맞설 힘이 없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대해, 그 어떤 변명도 구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박남옥의 인간적 매력이 아마도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국립극장의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은 그 매력에 다가서는 자리로서 부족함이 없으리라 본다. 더불어 ‘명색이 아프레걸’과 함께 영화 ‘미망인’을 챙겨 보는 것도, 음악극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장르 간의 미학과 어법의 차이를 확인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올해 12월 무대에 오를 이번 공연은 2021년 1월의 초연이 호평을 받은 이후 재공연되는 것으로,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대규모의 창작 음악극이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영화감독 박남옥, 그녀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지극히 미학적인 공간으로서 관객 을 기다리고 있다.

글. 배묘정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다카라즈카 소녀가극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의 공연예술을 비롯해 동아시아 지역의 사운드 메모리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국립극장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
시대를 뚫고 영화의 길로 뚜벅뚜벅!
박남옥에게 바치는 헌사
내가 할랍니다. 그거, 전쟁미망인 영화!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 격동의 시절 속 전통적 여성상에 도전한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그는 갖은 시련과 절망 속에도 메가폰을 잡아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 ‘미망인’을 남겼다. 녹록지 않은 환경 속 꿈을 잃지 않았던 박남옥의 주체적이고 파란만장한 삶과 영화 ‘미망인’의 서사를 교차해 시대를 앞서간 여성 영화감독의 삶과 고뇌를 풀어낸다. 성공과 실패로 평가할 수 없는 도전의 가치, 시련과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강인한 여성이자, 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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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의 호평에 힘입어 1년 만에 다시 뭉친
국립창극단 × 국립무용단 × 국립국악관현악단

해오름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국립극장 기획공연 <명색이 아프레걸>은 대극장 규모에 걸맞게 전속단체 단원들이 대거 참여, 초연보다 약 2배 이상의 출연진 구성을 통해 풍성한 무대를 선보인다. 10명의 국립창극단 배우들과 23명의 국립무용단 무용수, 22명의 국립국악관현악단 연주자와 함께 객원배우·연주자까지 총 75명의 대규모 출연진이 국립극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연말 공연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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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탄탄해진 대본, 음악, 안무!
해오름극장에서 화려한 비주얼로 관객들을 다시 만난다!

김광보 연출과 고연옥의 대본, 나실인의 음악, 이경은의 안무로 작품을 수정·보완하여 더욱 탄탄해진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명색이 아프레걸’은 초연과 마찬가지로 공연계 걸출한 제작진의 참여, 무대 위 대형 LED를 추가하여 더욱 감각적인 미장센을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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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오랜만에 동료들을 만난 박남옥은 전쟁도 끝났으니 ‘전쟁미망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한다. 친언니로부터 투자받은 돈으로 자신의 집에 세트를 짓고, 일본에서 온 촬영기사 김영준을 소개받는다. 박남옥은 태어난 지 백일 된 딸을 업고서 “레디-고!”를 외치는 한편 몰려오는 구경꾼들을 막고 배우, 스태프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까지 도맡으며 어렵사리 촬영을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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