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기행

송재영의 ‘춘향가’
소리에 홀려 40여 년 걸어온 한길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송재영 명창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명창(名唱)을 만나는 코너다. 완창(完唱), 판소리 한 바탕을 완주하는 것으로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이 걸린다.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오롯이 소리꾼의 기량으로 무대를 채우고, 관객과 소통하는 완창 공연은 수십 년 수련한 소리꾼에게도, 객석을 채우는 관객에게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1984년부터 매달 이 특별한 무대를 이어온 국립극장은 송재영의 ‘춘향가’로 2021년의 가을을 물들인다

자연, 관객과 어우러지는 소리
송재영

‘완창판소리’ 10월 공연을 앞두고 있는 송재영 명창을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흰색 바지에 검은색 티셔츠, 짙은 색 선글라스를 쓴 남성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 ‘설마?’ 하는 생각이 ‘맞구나!’ 하는 확신으로 바뀌고,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며칠 전까지 지리산에서 제자들과 수행했다는 그를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자니 왠지 미안하고 불편했는데, 그는 완벽한 도시인의 모습이었고 심지어 ‘패셔너블’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입은 건데 주위에서 그런 말을 자주 하더라고(웃음).”

평소에도 사흘은 전주, 이틀은 서울에서 소리를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송 명창은 지리산의 기운이 충만해서인지 마치 휴가를 다녀온 사람처럼 유쾌해 보였다.

“산에서는 일단 마음가짐이 달라져요. 도시는 모두 콘크리트잖아. 콘크리트 벽보다는 자연을 벗 삼아 소리를 하면 자기 역량을 더 발휘할 수 있고 창의력도 훨씬 향상돼요. 덜 피곤하고. 그게 왜 그러냐면 이 목이라는 것이 음양오행으로 보면 수(水), 물에 해당하거든. 산은 물을 머금고 있고 목을 적셔주니까. 폭포수에서 소리하는 것도 그 폭포를 뚫으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건 너무 과장된 것이고, 폭포 주변에 물안개가 끼잖아요. 천연 가습기지.”

자연과 도시를 조화롭게 벗 삼아서일까. 송 명창은 매주 전주와 서울을 오가고, 자신의 공연을 위해, 또 소리를 심사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느라 무척 바쁘게 살았지만, 여태 힘든 줄 몰랐다. 정말 힘든 것은 코로나19로 관객과 제대로 소통할 수 없는 무대라고.

“객석이 예전 같지 않고, 아예 영상으로만 공연할 때도 있으니까 많이 힘들죠. 소리는 관객이 상대역이 되기도 하고, 서로 교감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기운을 주고받는데, 혼자 하려니까 그냥 노동 같기도 하고….”

마냥 좋아하는 소리로 문화재 보유자 되다
송재영

그도 그럴 것이 송 명창에게 소리는 ‘재미’ 그 자체다. 소리와의 인연도 어찌나 재미난지. 전북 임실 출신인 그는 어딘가에서 풍물놀이가 펼쳐지면 신나게 따라다니던 꼬마였다. 그러다 중학교 하굣길에 그야말로 소리에 홀리고 말았다.

“1970년대니까 시골 장터에는 약장수 판이 있었어요. 국악인들이 중간중간 공연하고, 그사이에 약도 팔고. 어딘가에서 ‘삐리삐리피리리’ 태평소 소리도 나고, 여자 국악인들이 나풀거리면서 장구를 치는데 선녀들 같더라고. 진짜 홀린 듯이 막 돌아봤어요. 그다음 날 학교도 안 가고 아침부터 거기를 또 찾아갔지. 매일 구경하느라 보름 동안 학교를 안 가서 징계받고(웃음).”

약장수는 동네를 떠났고, 그도 일상을 되찾았다. 전주에 있는 예고에 진학할 때만 해도 그의 꿈은 화가였다. 하지만 학교 여기저기 놓여 있는 국악기를 보고 자신의 마음이 다시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저 없이 창악부를 선택했고, 그길로 이내 40여 년의 소리 인생을 걷게 된 것이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인분을 마신 적도 있어요. ‘동의보감’에 인분이 어혈, 장독에 좋다고 적혀 있거든. 소리를 많이 하면 골병이 들고 목도 많이 상하는데, 인분이 몸의 어혈을 풀어줘서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준 거겠죠. 지금이야 좋은 약이 많지만 예전에는 없었으니까. 공부할 때는 너무 힘드니까 ‘아휴, 때려치워야지’ 하고 놀기도 했지. 그런데 며칠 지나면 다시 하고 싶어. 아예 안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이쯤 되니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궁금해진다.

“그게 참 이상하죠. 소리가 수련 기간도 길고, 특히 남자는 활로 개척도 힘들고. 그런데 나는 그냥 좋았어. 목표를 세우고 무슨 상을 타고 뭘 해야 한다는 생각도, 소리로 돈 벌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남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런 청사진이 없었어요. 그냥 좋아서 했어.”

그런데 판소리로 무형문화재 보유자까지 됐으니, 좋아서 하는 사람 못 이긴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나 보다.

지난 5월 송재영 명창은 ‘이일주(본명 이옥희, 조선 후기 8명창 중 한 명인 이날치 명창의 후손) 바디 판소리 심청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됐다. 문화재 보유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이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능하니까 300년을 이어왔겠죠. 물론 그 뼈대가 이어지는 거예요. 각기 다른 사람이고, 남녀에 따라 성음도 달라지고, 사람마다 갖고 있는 에너지의 색깔도 다르니까. 창자마다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다르게 표현할 수 있지만, 소리의 본질은 그대로 가져가는 거죠.”

매일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300년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 그래서 더 의미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예전에는 선생님을 통해서만 공부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한테 가야 목을 땄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녹음도 하고 영상까지 보니까 어찌 보면 더 수월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많이 옅어졌죠. 선생님으로부터 그 정신, 담긴 철학까지 배우는 건데 자칫 죽은 예술이 될까 안타깝고, 그래서 나는 더욱 선생님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그 소리를 잘 전승하고 싶어요.”

송재영
짜임 좋은 ‘춘향가’ 동초제로 가을을 물들이다

국립극장의 10월 완창판소리는 송재영 명창의 ‘춘향가-동초제’다.

“‘심청가’로 문화재 보유자가 됐지만, 개인적으로는 ‘춘향가’가 참 좋아요. 소리의 짜인 구성이 좋거든. 특히 동초제는 ‘오자’가 없어요. 판소리는 구전이라 잘못된 말이 너무 많아요. 오자도 많고, 탈락된 말도 많고. 그래서 문맥이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동초제는 그런 부분에서 가장 논리적이고 그래서 더 문학적이죠.”

지난 40년간 ‘춘향가’를 수없이 발표했고, 6월에도 전주에서 8시간 완창을 했고, 무대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그저 관객들과 원활하게 교감하고 싶을 뿐이다.

“무대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도 없어요. 무대에서 오히려 힘을 받으니까. 다만 나를 보기 위해 오신 관객한테 안 좋은 컨디션으로 실망감을 드리거나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못 만들면 어쩌나, 소리는 혼자 달랑 나와서 부르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관객과 교감하는 것이니까 그런 부분에서 압박감은 있죠.”

그저 좋아서 지금까지 바쁘게 걸어온 소리의 길. 이제 그는 좀 더 책임감과 사명감을 지니고 다듬어가려 한다. 가장 큰 그림은 동초제 다섯 바탕을 모두 발표해서 자료로 남기는 것이다.

“판소리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게, 옛날 선생님들이 했던 소리를 고스란히 전해 주고 싶어요. 소리는 노래가 아니거든. 국악 목이 강하니까 판소리를 토대로 다양한 장르가 파생되고, 그렇게 판소리의 우수성이 많이 알려지는 건 좋지만, 또 그만큼 잘 지켜야죠. 우리 고유의 발성, 발음이 따로 있으니까. 지금 소리는 너무 여성화된 면도 있어요. 저마다 자기 음역대가 있잖아요. 남성 소리꾼으로서 역할도 있는 거죠. 또 내 목에 맞는 어떤 시김새, 시김새라는 게 애매하고 추상적일 수도 있지만, 내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있거든. 아지랑이 같은, 어머니 손맛 같은, 내 목에 맞는 시김새를 좀 더 구사해야겠다 생각하고… 그러고 보면 소리라는 게 참 어려운 문화재야(웃음).”

송재영
송재영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약력
현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강사
전라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 및 도립국악원 판소리 교수 역임
사사
이일주(동초제 판소리 다섯 바탕 사사)
수상 내역
2021년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대상 수상
2019년 대한민국 신지식인경영 문화인 대상 수상(투데이 언론 선정)
1988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일반부 장원
1996년 전국고수대회 명고부 장원(국무총리상) 수상
1997년·2000년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 명창부 최우수상(장관상) 수상
2001년·2002년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차상 수상
2003년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 (대통령상)수상
글. 윤하정 사직서 내고 유럽 공연 기행 떠난 전 방송기자, 공연 전문 인터뷰어. 투어 이후에도 ‘유럽여행’ ‘문화예술’을 키워드로 말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을 펴냈다
사진. 박정훈 사진작업실
프로필 사진. roh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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