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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극 옥이’ 프리뷰
‘소리극 옥이’, 성장과 연대의 노래

‘떼창’을 넘어 ‘챌린지’의 시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15초짜리 음악에 맞춰 춤추는 쇼트폼 콘텐츠로 가득하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방탄소년단도 새로운 곡이 발매될 때마다 다양한 댄스 챌린지 영상을 제작하는데,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의 챌린지는 조금 특별하다. ‘즐겁다’ ‘춤추다’ ‘평화’라는 뜻을 가진 국제수어가 챌린지 안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물리적·사회적 장벽을 없애기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free)’ 운동은 최근 공연예술계에서도 뜨거운 화두다. 음성 해설과 수어 통역이 함께하는 무장애 공연 횟수가 늘었고, 극장 입구를 변경하거나 경사로를 마련해 장애인 관객의 이동권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현대의 바리데기가 된 장애인과 트랜스젠더
‘소리극 옥이’ 공연 사진 ‘소리극 옥이’ 공연 사진

10월 5일부터 10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될 ‘소리극 옥이’는 장애인 극단 다빈나오의 대표작이다. 2015년에 초연된 작품은 시각장애인 옥이(전인옥)와 트랜스젠더 은아(방기범)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은아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만난다. 옥이는 평생을 함께해 온 엄마가 식물인간이 되자, 엄마가 녹음해 준 책을 점자책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다가오는 엄마와의 이별을 두려워하며 “엄마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고민한다. 온전한 독립이 어려운 세상인 탓이다. 그러던 중 엄마의 상태를 알리는 전화가 걸려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옥이의 전화를 은아가 대신 받아주며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소리극 옥이’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의 외면 속에 살아온 장애인과 트랜스젠더를 현대판 바리데기로 봤다. 작품의 모티프가 된 바리데기 설화는 인물의 설정과 옥이의 꿈으로 이어진다. 옥이는 꿈에서 죽어가는 아비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모험을 떠난 바리데기가 된다. 작품은 바리데기 설화의 서사를 충실히 따라가지만, 장애인 배우들의 연기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저승’(신강수)은 저승의 문 앞에 온 바리데기에게 “큰 키가 매력적”이라며 허세를 부린다. 저신장 장애인의 목소리를 통해 발화되는 대사는 장애를 인정하고 이를 자신만의 특별함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극단의 태도를 보여준다. 뇌병변 장애인이 연기한 ‘범’(황철호)도 마찬가지다. ‘범’은 자신의 저주를 풀어주면 생명수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바리데기에게 일을 시키고 일곱 아이까지 낳게 한 인물. 그러나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엄마를 살리겠다는 바리데기의 의지에 자신의 휠체어를 내준다. ‘소리극 옥이’는 ‘범’의 행동을 통해 모든 것을 내주는 사랑의 정의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셈이다.

옥황상제 앞에 어렵게 다다른 후에도 옥이는 그를 쉽게 만나지 못한다. 자신이 받은 번호표의 숫자를 시각장애인인 옥이는 볼 수 없어서다. “내가 보지 못할 거면 소리도 사라지게 했어야지.” 무대는 칠흑같이 어둡고, 침묵을 뚫고 쏟아지는 옥이의 대사는 송곳처럼 날카롭다. 옥이는 꿈에서마저 차별받고, 은아는 누군가가 던진 돌에 가게 창문이 깨지는 일을 수시로 경험한다. 하지만 꿈에서 깬 옥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엄마가 쳐둔 안전한 울타리 밖으로 나온다. 깨진 유리 조각에서 무지개를 발견한 은아에게 무지개를 상상할 수 있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장애예술가의 존재를 통한 장벽의 인식

고백하자면 계단 하나가, 리플릿의 글자가 누군가의 공연 관람을 포기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장애예술가 작품의 존재 역시, 2018년 극단 애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 조건만남’을 보고서야 알았다. 사회적 약자의 삶을 다루는 작품에서 그들의 이야기가 소재에 머무는 때가 종종 있다. ‘소리극 옥이’는 장애예술가들이 경험하는 일상성을 ‘바리데기’ 설화에 접목한 것에 가깝다. 이를 통해 장애 당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고, 비장애인 관객은 현실에 비일비재한 장벽을 인식하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을 만든 극단 다빈나오는 다양한 형태의 장애예술가들이 모인 극단이다. 희곡부터 음향 설계, 동선에 이르기까지 제작 전반에 걸친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소리극 옥이’의 음성 해설은 대사를 낭독하는 수준을 넘어 인물이 마주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애써 드러내지 않은 누군가의 내밀한 감정을 대신 읽어주기도 한다. 음성해설자가 단순한 통역사가 아닌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존재가 되면서, 작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아우른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극 전반에 걸쳐 건반, 베이스기타, 대금, 해금이 사용된다. 건반이 기본 멜로디를 담당한다면, 해금은 작품의 정서를 완성한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의 합이 연대의 메시지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감각적 소통을 위한 시도
‘소리극 옥이’ 공연 사진 ‘소리극 옥이’ 공연 사진

장애예술가의 연극은 20년째 계속되고 있다. 2001년 연극 동아리로 시작한 극단 휠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장애인 극단이다. ‘다 빈 마음으로 나오시오’라는 뜻의 다빈나오는 장애인들의 일상에 주목하고, 극단 애인은 장애예술가들의 ‘움직임’을 통해 자기 몸을 사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농인 아티스트와 함께 수어 콘텐츠를 만드는 핸드스피크는 뮤지컬 ‘영웅’의 ‘누가 죄인인가’를 수어 뮤직비디오로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 허리’는 예술을 넘어 장애인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으로 영역을 넓히기도 한다.

그동안의 작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요구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무장애(배리어프리) 공연은 비장애인 창작자들이 장애 예술가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바탕으로 그들의 고유성을 담아내는 편에 가깝다. 무장애(배리어프리) 공연이 제작의 일부로 인식되면서, 평등한 관람을 위한 다양한 연출도 필요해졌다. 창작자들은 작품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장애인과 함께 감각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찾는다. 래빗홀 씨어터의 연극 ‘마른 대지’는 공연 전 시각장애인들이 무대 미니어처를 터치하는 방식을 통해 무대를 상상하도록 도왔고,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음향 연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간을 인식하도록 했다. 제로셋(0set) 프로젝트 역시 ‘관람 모드-만나는 방식’에서 관객이 장소를 이동하고 배우의 행동을 따라 하는 참여를 통해 장애예술가 각각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방식을 택했다.

연극은 장애예술가의 존재,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를 통해 관객이 더 넓고 깊은 사유를 하도록 돕는다. 장애예술의 목표는 장애의 인식을 넘어 ‘장애예술가’라는 타이틀이 아닌 인간 자체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확인하는 데 있다. 음성 해설과 수어 통역, 점자 리플릿이 여전히 낯설지도 모른다. 장애예술이 낯선 것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자주, 더 많이 만나야 한다. 알지 못했던 면들을 마주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그리하여 비로소 모두가 함께 사는 것. 극장을 열고 극장을 넘는 힘이 여기에 있다.

글. 장경진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공연예술 속 여성의 선택과 삶에 주목하는 무크지 ‘여덟 갈피’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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