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
예술가의 상상력으로
기후위기를 감각하다
2020년 여름, 예술가들은 강원도 화천 예술텃밭에 모여 ‘기후변화’를 주제로 레지던시를 시작했다. 처음 기획을 하고 참여 예술가를 모집할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지금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참여 예술가들은 코로나의 확산과 함께 기후변화를 연구 및 감각했고, 어느새 언어는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로 바뀌었다. 지난 2년간의 변화다.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의 참여 예술가들 ⓒ최용석

예술계가 직면한 기후위기

레지던시는 2020년 ‘화천에서 환경을 말하다’에 이어 2021년에는 ‘관점의 전환, 세상을 보는 시선들’을 주제로 진행됐다. 연극, 무용, 시각, 영화, 그림책 작가와 리서처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기획자·기록자들이 약 6개월 동안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고, 참여 예술가들은 각자 세부 주제에 따른 탐구를 통해 작업을 발전시켰다.
기후변화의 첫인상은 막막함과 거대함이었다. 레지던시 참여자들은 대기과학자와 생태학자의 강연을 듣고 지식과 정보를 모았다.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으로 지구 온도가 곧 1.5℃ 상승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분석과 함께 지구의 디스토피아 시나리오를 마주했다. 생태학자가 보여주는 역삼각형의 기형적 생태계와 인간이 지구에 끼친 악영향을 들으며 우리 자신을 그들로부터 분리해 내지 못했다.
막막함과 거대함이라는 첫인상은 공포와 두려움, 무기력과 우울감으로 바뀌었다. 급박한 전환이 필요한 지금, 예술가는 끝도 없이 초라해지고, 예술은 그저 미약할 뿐이었다. 예술가보다는 기후변화 활동가가 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예술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각자의 예술적 언어로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함께 읽은 책 중 조효제 교수의 『탄소 사회의 종말』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감정의 핵심을 상실로 보고,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상실의 크기는 오로지 예술가만이 측정할 수 있으며 예술가들의 측정 단위인 슬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이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예술의 미약함은 다시 힘을 얻었다.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는 기후위기를 문화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상상력이야말로 예술가들의 것이다. 상상과 이야기를 통해 막막하고 거대하면서도 추상적인 담론을 개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구지민 작가의 <귀여운게 좋은데 기후변화는 어떡하죠?> ⓒ최용석

인간을 넘어 다양한 주체 되기

참여 예술가들은 조사를 통해 각자의 주제를 찾았다. 기후변화를 대기과학적 관점뿐만 아니라, 생태·사회·경제·인권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봤다. 2021년 레지던시의 주제처럼 관점을 전환하고 인간을 넘어 다양한 주체가 되어 그들의 시선을 감각해 보려 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나무에 멧돼지와 아프리카돼지열병, 채식과 기후위기, 미래의 재난, 착취의 구조, 숲과 기후위기, 기후 난민, 비인간 서사, 기후와 지역 등 굵은 가지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레지던시에 2년 연속 참가한 드로잉 작가 구지민은 첫해, 인간의 작은 행동들과 범지구적 기후변화의 긴밀한 연결고리에 주목하며 평온한 도시의 삶이 도시 밖과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고자 했다. 두 번째 해, 작가의 고민은 깊어졌다. ‘연결’이라는 주제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만들어나갔고, 자신의 예술적 언어인 드로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웹툰 <기후위기인간>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림책 작가인 김영경은 기후위기가 가진 심각성에 비해 기후 문제를 다룬 그림책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을 파악하고, 재난과 인간의 욕망으로 파괴되어 가는 숲과 작은 희망을 담은 그림책 『북쪽가문비나무』의 글을 쓰고 원화 다섯 점을 발표했다. 작가는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감과 슬픔, 혹은 희망인지도 모를 어떤 마음을 안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가 되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 이성직 작가의 <Let’s Birding> 현장. ‘새 하는 중’인 참여 예술가들 ⓒ최용석
  • 윤종연 작가의 <이동하는 세계> ⓒ최용석

연극·무용·거리예술 등 공연예술 작가들의 작업은 활동적이었다. 이혜원 작가의 『바위가 되는 법』은 멧돼지의 위협을 막기 위해 화천을 둘러싼 철조망을 따라 걸으며 만들어낸 희곡집이다. 관객은 작품 속 A에게 자신을 대입하며 작가가 공간 속에 뿌려놓은 이야기를 따라간다. 한 번도 찾지 않은 건물 뒤편으로 몸을 돌리면, 숲의 일부인 멧돼지를 만나게 되고 순간 숨이 멎는다. 작품은 숲에서 조용히 죽어간 멧돼지의 삶에 대한 경의이자 애도이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실체 없는 공포에 대해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현실의 목도였다.
이성직 작가의 <Let’s Birding>은 새 관찰하기, 즉 탐조의 의미와 ‘새 하는 중’이라는 낯선 의미를 담는다. 인간이 새가 되고 인간의 관점에서 새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새와 교류를 지속하는 것, 작가는 이것을 ‘새 하는 중’이라고 해석한다. 작가는 ‘새 하는 중’을 시작하기 위해 인간의 몸에 흔적만 남아 있는 날개 뼈를 인식하며 새 되어 보기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탐조를 이끈다. 먼저 소리로 감각하고 시각이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 새가 있고 관객은 작가를 따라 ‘새 하는 중’을 한다.
윤종연 작가의 <이동하는 세계>는 인간 서사에 주목한다. 작품 속 인간은 기후 재난으로 삶의 터전에서 떠밀려 나간다. 머무를 곳 없는 난민처럼 부유할 수밖에 없는 삶의 처절함은 작가의 몸에 실려 차갑게 얼어붙은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김보람 작가의 <움직이는 숲> ⓒ김보람

게임 형식을 띤 작품도 있다. 김보람 작가의 <움직이는 숲>이다. 현재 나무들은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1년에 6.4km씩 북상해야 한다. 게임 내 정치인·연구가· 운동가·기업인이 각자의 목표를 성취하며, 나무를 보호구역으로 옮긴다는 내용이다. 각자의 목표 성취도 중요하지만, 탄소 배출을 적절히 줄이지 않으면 재앙이 발생해 나무가 죽어 게임에 지게 된다. 산불과 같은 재앙으로 원시림 한가운데 신령함이 깃든 나무를 잃게 되면 마음이 무너진다. 얼마 전 강풍으로 동해의 산들을 모두 휩쓸어 버릴 것 같았던 산불에서 금강송 군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김보람 작가가 만든 게임의 현실판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산불만 보고 그 안에 내재된 수많은 비인간 생명의 상실과 인간의 욕망이 불러일으킨 기후위기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욕망’과 ‘상실’, 이 두 단어는 레지던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의 화두다. 상실은 슬픔을 낳고, 그 슬픔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인간이라는 ‘나’로 귀결된다. 레지던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조사의 내용과 질문을 공유하고 협업하며 점점 단단해졌다. 기후위기의 첫인상이었던 막막함과 거대함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서사가 되고, 주제는 복잡하게 연결되며, 레지던시 밖으로, 그리고 작가의 미래 작업 세계로 확장됐다.
김보람 작가는 레지던시 이후 보드게임을 기초로 한 <움직이는 숲, 불타는 집>이라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발표했다. 보드게임 속의 숲을 크게 만들어 관객이 숲속으로 이동하면서 게임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운동가가 되어 연구자와 채팅을 통해 나무를 살리는 과업을 수행하는 내용이다. 이성직 작가는 올해 서울에서 더 많은 사람과 ‘새 하는 중’을 제안하며 <Let‘s Birding>을 이어갈 예정이며, 보이지 않는 대기의 세상을 탐구하며 공기를 채집했던 박은주 작가가 발표한 <기체극장>은 예술교육의 언어로 확장된 시도를 할 예정이다. 또한 기후 우울증을 주제로 시나리오를 발표한 이하경 작가의 영화와 김영경 작가의 원화가 그림책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예술가, 사회적 책임에 답하다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가 진행된 지난 2년간 예술계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새롭게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의 작업과 목소리가 퍼지면서 다른 예술가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기후위기가 점차 외면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의 말을 다시 인용하려고 한다.

“미래 세대가 돌아보면 그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현시대의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을 비난하겠지만, 가능성에 대한 상상은 정치인과 관료들만의 일이 아니기에, 예술가와 작가들에게도 동등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2022년 여름, 다시 예술가들은 화천에 모인다. 기후위기는 여전히 막막하고 거대함의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겠지만, 지난 2년간 함께한 예술가들의 활동과 연대가 예술가의 상상력을 이끌어주리라 기대한다.

글. 박지선 연극·무용·다원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걸쳐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다. 축제, 레지던시 기획, 공연예술 작품 제작 및 국제 네트워크(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PP)를 기획,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경계·기술과 예술·기후변화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예술가와 새로운 탐험을 하며 예술의 동시대성을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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