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을
주는 곳

보안여관 & 보안1942
사색과 사유와 시대의 흔적
굴곡진 사연마저 넉넉하게 품어줄 듯한 통의동 골목길. 경복궁 담장길을 따라 거닐다 보면, 오래된 붉은 벽돌 외벽에 투박하게 내걸린 ‘여관’ 간판이 발길을 절로 멈추게 한다.
보안여관 & 보안1942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33

80여 년 세월이 만들어낸 복합문화공간

지킬 보保, 편안한 안安, ‘손님의 안전을 지킨다’는 보안여관의 시작은 8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오가는 객들의 쉼터이자, 만남과 이별이 끊임없이 반복되던 이곳은 2004년까지 실제로 운영된 여관이었다. 무엇보다 젊은 작가들과 예술인들이 서울에서 터를 잡기 전 묵으며 작품 활동을 펼친 작업실이었으며, 시인 이상, 화가 이중섭이 즐겨 찾던 곳으로도 전해질 만큼 많은 예술가가 지적 허기짐을 채우던 곳이기도 했다.
보안여관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저 시간의 낡은 흔적만이 아닌, 옛 문인의 자취를 희미하게나마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듯 감상에 젖게 한다. 건물의 거친 골조와 낡은 서까래,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전선과 벗겨지고 부서진 옛 타일이 여관의 좁은 복도 좌우로 펼쳐진다. 작품이 걸리지 않아도 고유의 감성과 사연을 품고 있는 갤러리 그 자체다.
세월이 흐르면서 낡은 시설과 허름한 외관으로 외면받던 이곳이 2007년 ‘문화숙박업’이란 별칭으로 재정비된 뒤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관으로 운영됐던 구관 옆에 닮은꼴의 신관 ‘보안1942’를 지으면서다. 신관인 보안1942 지하 2층 전시 공간에는 건축 당시 발견된 유물이 바닥 유리를 통해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새롭게 만들어졌으나 역사가 깃든 유물을 품고 있는 모습이 세월의 단편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구관과 신관 두 건물은 구름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시대와 시대, 세대와 세대를 잇듯이.

역량 있는 신진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채워지는 프로젝트 전시공간 ‘보안클럽’
유니크한 콘셉트의 해외 서적이 구비되어 있는 신관 2층 독립서점 ‘보안책방’

예술적 고민이 켜켜이 쌓여가는 아지트

옛 세대에는 오랜 향수를, 어린 세대에는 생경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보안여관은 구관과 신관이 서로 역할을 보완하며 각기 돋보이게 한다. 구관이 역사적 배경 위에 지어진 되새김의 흔적이라면, 신관은 현재와 내일을 아우르는 문화적 이정표와 같은 공간이다.
신관 지하 1, 2층은 ‘보안클럽’이라는 프로젝트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진 아티스트들이 선보이는 실험적 예술 세계를 다채롭게 만나볼 수 있다. 그동안 100회가 넘는 전시가 보안여관과 보안1942 공간을 통해 선을 보였다. 신관 1층에는 카페 ‘33마켓’이 자리해 있다. 경복궁 담장길과 사이좋게 마주 보며 품질 좋은 전통차를 비롯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2층에 자리한 독립서점 ‘보안책방’은 환경, 비건, 아트북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구비해 놓고 있다. 일반 서점에서 일일이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소재 및 디자인의 서적을 한데 아울러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가로로 길게 난 통창 너머로 건너편 경복궁 담장과 은행나무가 한눈에 펼쳐지는 풍광이 매력적이다. 사계절 다양한 색채로 물드는 은행나무와 담장 풍경이 공간의 영역을 바깥으로 확장시키는 듯하다.
한편, 3~4층은 보안여관의 명맥을 잇는 숙박 시설 ‘보안스테이’로 운영되고 있다. 멀리 북악산과 경복궁, 청와대, 서촌 한옥 등 주변의 특색 있는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입소문 난 곳이다. 한국적 색채를 지닌 현대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작품 및 가구들이 품격 있는 인테리어를 완성한다.
이처럼 보안여관은 시각예술 전시뿐 아니라 일상에서 즐기는 문화 활동을 집약적으로 모아두고 휴식 같은 시간을 선사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유와 사색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그 외에도 플리마켓, 청년예술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해외 문화예술 교류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옛 문인들이 그러했듯 동시대를 고민하고 사유하며, 사회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이어주는 생활밀착형 예술을 지향한다.
100년 가까운 시간을 품어온 보안여관이 앞으로 펼쳐낼 이야기는 무엇일까. 시간의 가치가 켜켜이 쌓여가는 이곳에서 오래된 미래를 만나본다.

엄선한 전통 차와 직접 구운 베이커리를 맛볼 수 있는 신관 1층 ‘33마켓’
보안여관 & 보안1942 바로가기 http://b1942.com/
취재. 편집부 사진. 김성재 SSSAUN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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