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셀럽

주목할 만한 크리에이터
솟구치는 과거, 움켜쥐는 미래
공간 디자이너 양태오
지금 국제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한민국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바로 양태오가 아닐까. 한국의 정서를 세계에서 통하는 보편적인 감성으로 이끌어낸 그의 작품은 ‘미래 속 과거’라는 키워드로 사람들을 매혹 중이다.
양태오 디자이너 ⓒ태오양스튜디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가 매우 기묘한 순간이었음을 나중에 인지하는 경우가 있다. 양태오가 바로 그랬다. 양태오를 처음 만난 곳은 아마 2017년 한 갤러리에서 열린 파티였던 것 같다. “이분이 바로 그 양태오 실장님이세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주고받은 후 나는 ‘바로 그 실장님’을 네이버와 구글에서 찾기 시작했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웹으로 바라본 양태오는 셀러브리티의 전형이었다. 시카고 예술대학과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서 공부하고 네덜란드의 스타 디자이너인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의 스튜디오에서 인턴십을 마친 그는 2010년 귀국해 태오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다. 매체에서 ‘양태오’를 치면 자동으로 뜨는 키워드는 한옥.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 총 두 채로 이루어진 북촌 한옥을 구입해 자신의 집이자 스튜디오로 사용하고 있는데 외국 유명 인사가 들르는 명소가 되었다. 심지어 그는 유명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소속 아티스트로 이름이 올라가 있을 정도였다.

양태오 디자이너는 북촌 계동의 한옥 두 채를 사들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현재 계동 한옥은 그의 자택 겸 스튜디오로 쓰인다. ⓒ태오양스튜디오

흥미로운 시선으로 담은 한국의 정체성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8년 넘게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스타 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졌는데 공식 홈페이지 포트폴리오 개수가 생각보다 적었다. 특히 2016년을 기점으로 결이 확 달라진 점이 눈길을 끌었다. 2016년 ‘망향휴게소 화장실 리노베이션’, 2017년 ‘롯데월드타워 123층 루프톱 라운지’와 ‘주중한국문화원 VIP 접견실’, 런던의 럭셔리 침대 브랜드 ‘사보이어(Savoir)’와 합작한 침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기존 작업보다 네 가지 프로젝트는 동양적인 지점을 계속 건드렸다. 그가 뽑아내는 비례와 균형은 중국과 일본이 아닌,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게 분명해 보였다. 보통 한국의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보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으로 수렴되거나 옛 미감을 피상적으로 옮겨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양태오의 포트폴리오는 극적인 연출 대신 담백하게 풀어내면서 동시에 높은 수준의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모호한 한국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묻어나오는 그의 작업을 대하며 나는 다시 한번 의문에 빠졌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
기묘하게도 첫 만남 이후 포트폴리오는 순차적으로 한둘씩 채워졌다. 그것도 수준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시작은 아모레퍼시픽 사옥 아래에 오픈한 ‘카페 알토 바이 밀도(Cafe Aalto by Meal˚)’였다.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철학을 그대로 계승해 풀어낸 형태는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윽고 공개한 자신의 ‘한옥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전후를 비교하면 한옥의 격이 껑충 뛰어올랐다. 과거와 현대를 영리하게 엮은 형태는 그가 지닌 취향의 수준이 무척 깊고 높다는 인상을 주었고, 특히 각종 기물과 소품의 활용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2018년 그가 공동 창업자로 참여한 스킨케어 브랜드 ‘이스 라이브러리(EATH Library)’는 플래그십 스토어 공간도 흥미로웠지만, 특히 화장품 용기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원과 사각형을 조합한 용기는 단순하지만, 고도로 압축된 미감의 산물로 다가왔다. 팽팽하게 터질 듯 정중동의 균형이 담겨 있던 작은 용기는 이듬해 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 잡지인 『월페이퍼(Wallpaper*)』의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건물 전체를 부수고 다시 지은 국제갤러리의 본관이 2020년 개장했을 때, 양태오는 갤러리라는 공간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인 예술품을 공간과 융합해 과감함과 섬세함을 모두 아우르는 인테리어를 선보였다. 전보다 공간에 대한 장악력이 높아져 리듬감이 부각됐고, 국내 어떤 갤러리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이 독특한 공간은 이듬해 『월페이퍼』의 디자인 어워드를 또 한 번 수상했다. 협업 작업의 경우도 펜디(FENDI), 예올(YEOL), 삼성,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 드 고네이(De Gournay) 등과 진행하며 하나하나 빼어난 결과물로 구현됐다.

한옥과 신라 토기에서 영감을 얻어 공간을 구성한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 역사관 로비 리노베이션. ⓒ태오양스튜디오

공간이 가진 힘과 가능성을 인지하다

개인적으로 양태오의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놀라운 예는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역사관 로비 리노베이션’이다. 2020년 11월 새롭게 선보인 로비는 양태오가 머무르고, 연구하고, 체득한 조선 시대 한옥의 목조 미감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의 미에서 파생하는 시각적이고 개념적인 요소를 어떻게 공간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토기에서 영감을 얻은 묵직하고 강렬한 직각 요소를 천장에 과감하게 대입하고, 선과 선이 만나는 비례와 조명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삼국시대의 안목을 조형적으로 훌륭히 풀어낸다. 무엇보다 민낯의 토기와 석상이 보호 유리를 벗어나 관람객을 마주하는 침묵의 순간을 조성한 건 공간이 가진 힘과 그 가능성을 명확하게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후 진행한 롯데백화점 동탄점 1층에 등장한 카페 ‘엘리먼트 바이 엔제리너스(A`lement by Angelinus)’는 흰색의 순결하고 세련된 느낌을 강조하면서 중앙에 공예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형식을 차용해 국립경주박물관 작업에서 얻은 결실을 색다르게 끌어온 경우였다. 한남동에 문을 연 ‘타데우스 로팍 서울 갤러리(Thaddaeus Ropac Seoul)’의 경우, 좁고 긴 공간을 섬세하게 어루만져 예술 작품의 힘을 해치지 않고, 관람에 집중할 수 있는 은은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올해에는 국립한글박물관 로비와 GS에너지 본사 공간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강조하던 목재 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에 돌과 금속의 묵직함을 적극적으로 엮었다. 공간을 매력적으로 구성하는 장악력의 상승을 계속 증명하는 듯하다.
5년 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포트폴리오와 훈장을 켜켜이 쌓은 양태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과거의 유산에서 정수를 뽑아내 현재와 융합하면서 한국성과 지역성을 국제적인 보편성으로 올리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미래 속 과거’라는 말로 압축되는 그의 신념은 처음에 천천히 진행하다 이후 급격하게 상승하는 그래프처럼 균질한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얄궂게도 내가 양태오를 처음 보았던 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직전의 과도기였던 셈이다. 『월페이퍼』 『모노클(Monocle)』 『디자인 앤솔로지(Design Anthology)』 같은 국제 매체의 주목을 지속해서 받던 양태오는 지난해 세계 3대 아트 서적 출판사인 파이돈 프레스(Phaidon Press)에서 발행한 『바이 디자인(By Design: The World’s Best Contemporary Interior Desingers)』에 포함됐다. 90명의 심사위원단이 추천한 전 세계 인테리어 스튜디오 100곳을 담은 리포트 같은 책인데, 놈 아키텍츠(Norm Architects), 앙드레 푸 스튜디오(Andre Fu Studio), 스튜디오 자크 가르시아(Studio Jacques Garcia), 디모레 스튜디오(Dimore Studio), 네리&후(Neri & Hu) 같은 거물과 같은 반열에 오른 것이다. 게다가 올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 매체 중 하나인 『아키텍추럴 다이제스트(Architectural Digest)』가 매년 선정하는 전 세계 100곳의 스튜디오 리스트인 ‘AD100’에 이름을 올렸다. AD100은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자사의 경력에 주요 실적으로 기록하는 굉장히 명예롭고 실용적인 증표다. 2022년 현재의 양태오는 세계시장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한국의 공간 디자이너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먼트 바이 엔제리너스는 단순히 카페 기능에서 멈추지 않고 예술적 공간으로 가치를 확장했다. ⓒ태오양스튜디오

끝없는 열정으로 만들어가는 미지의 여정

양태오는 아직 젊고 계속 변화한다. 요즘 그는 공간 디자인에 머물지 않고 컨설팅과 브랜딩으로 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실제 엘리먼트 바이 엔제리너스와 GS에너지의 경우, 탄소 저감과 관련해 공간 개념부터 완공까지 컨설팅의 모든 과정을 고루 밟았다. 롯데호텔의 공간 컨설팅에도 참여하며 시그니엘 브랜드에 깊게 관여하기도 한다. ‘테오홈’부터 시작된 자체 브랜딩은 작년 가구 브랜드 ‘이스턴 에디션(Eastern Edition)’ 출시로 이어졌다. 여러 곳을 거쳐 이제 제주도의 특급 호텔과 국회의사당에도 진출했다. 올해 봄에는 향수 브랜드도 선보인다니 그 정력적인 활동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이런 역량의 확장은 스튜디오에 더 많은 자유와 동기를 던지며 동시에 더 높은 역할과 책임을 요구한다.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그의 탐험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계속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글.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월간 디자인』『SPACE 공간』『노블레스』『브리크』에서 일하며 글을 써왔다. 현재『비애티튜드』편집장이며, 『조선일보』『디에디트』『럭셔리』에 기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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