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꽃’은 얼마 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동학대 이야기를 담은 음악이에요.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져 있죠. 손다혜 작곡가는 분명한 이야기나 사회적 이슈를 종종 다루는 편인데 이 곡을 연주하면서 이분이 음악으로 이야기를 참 알맞게 들려주는 음악가라고 느꼈습니다. 특별히 제가 근래에 이 곡을 다시 연주하면서 정말 피부로 느꼈던 곡이라 이렇게 소개하게 됐습니다.
첫 연주는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진솔 지휘자와 함께 했었고, 초연인데도 연주가 잘됐었어요. 최근엔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에서 이 곡을 다시 연주했는데 국립국악관현악단의 5대 예술감독이던 원일 선생님의 지휘로 함께해서 더 각별했죠. 또 손다혜 작곡가의 다른 곡도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2020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신년 음악회>에서 ‘애국가 환상곡’이라는 작품도 연주했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해오던 <유엔 평화음악회>를 위해 손다혜 작곡가에게 곡을 위촉해서 ‘평화의 꽃’이라는 곡도 받았죠. 그 곡도 참 좋았어요.
곡은 크게 일곱 부분으로 나뉩니다. 각 부분의 제목은 ‘구원의 손길’ ‘작은 꽃’ ‘불안한 그림자’ ‘홀로, 외로이’ ‘어둠 속의 고통’ ‘한 줄기 빛’ ‘훨훨 날아가렴’이고요. 곡은 강렬한 포르테(f)로 시작하는데요, 악기들의 음이 층층이 쌓이면서 비극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줍니다. 굉장히 인상 깊은 도입부죠.
‘작은 꽃’은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듯한 부분인데 밝고 예쁜 것 같으면서도 위태로움이 엿보여요. 선율도 단조로 진행되고요. 이후엔 정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나를 쫓아오는 듯한 장면, 어린아이가 우는 듯한 소리가 그려집니다. ‘홀로, 외로이’라는 부분에서는 정말로 아이가 혼자 무언가를 견디는 것처럼 가야금 솔로가 상당히 자주 나와요. ‘한 줄기 빛’에서는 빠른 호흡이 이어지면서 누군가 이 아이를 애타게 찾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기선 가야금 산조에서 나오는 빠른 주법이 많이 쓰였어요. 손다혜 작곡가는 이런 감정적인 부분을 특히 반음계로 많이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훨훨 날아가렴’은 에너지를 많이 쏟으면서 뻗어나가는 부분이에요. 악보를 보면 정말 단순합니다. 악기들이 다 정박에 제때 들어오면서 관현악 전체가 완전히 쌓여서 함께 합주하는 간단한 형태지만 정말 효과적인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죠. 그리고 거기서 끝내면 카덴차가 시작됩니다.
제가 혼자 연주해야 하는 카덴차는 좀 길어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함축해서 다시 한번 제가 호소하는 부분이에요. 빠른 호흡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깊이 있는 감정을 표현해야 해서 굉장한 집중과 몰입이 필요하죠. 그 카덴차가 연주된 뒤 마지막 피날레에선 정말 무언가를 심판하듯이, 판사봉을 두드리는 것처럼 강렬한 소리를 냅니다. 그렇게 곡이 마무리됩니다.
작곡가는 어린아이가 겪은 힘든 상황을 선율로 표현하면서 잘 안 쓰던 주법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학대당하는 아이를 가야금으로 표현했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악기를 사람처럼 대하고, 아이를 보듬어주듯이 악기를 쓰다듬는다거나, 때로는 마음 아픈 장면이지만 줄의 진동을 극대화해 회초리로 때리는 듯한 소리를 표현했었습니다.
여태 수많은 협연을 해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왜냐면 공연 전날 연습을 그렇게 많이 안 했거든요. 대신 정인이 사건에 대한 자료를 종일 봤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계속 보고, 정인이가 지었던 표정, 몸에 났던 상처, 그 부모들의 거짓말, 이런 것들을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종일 본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 날 연주를 마무리한 뒤에도 바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어요. 곡이 끝났는데도 여러 감정이 몰아쳐서요. 내가 이 이야기를 잘 표현했을까, 사람들에게 호소가 됐을까, 이런 감정이 드는 동시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연주를 끝낸 후에도 한참 가만히 있었어요. 다행히 관객분들도 그에 공감하셨는지, 함께 그 시간을 보내주셨고요.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지만, 실제 리허설 단계에서는 연주에 좀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오케스트라와 합주하기 전에 작곡가와 한두 번 따로 만났어요. 작곡가와 제가 생각하는 가야금 파트를 먼저 조율한 후에 오케스트라와 만나는 게 효율적이니까요. 합주 리허설할 때는 아무래도 음향을 많이 잡았습니다. 가야금이라는 악기가 합주에 참여했을 때와 독주자로 나설 때의 차이가 상당히 커요. 말하자면 소리가 ‘묻힌다’고 하죠. 그래서 다른 악기들의 위치도 바꿔가며 볼륨을 조율했어요. 그런데 이 구체적인 내용을 떠나서, 연주가 입장에서는 이런 곡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요. 손다혜 작곡가는 곡을 쓸 때 바로 음표부터 적어나가는 게 아니라, 음악이 어떤 드라마를 그려야 할지 먼저 글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불안한 그림자’ 같은 부분도 관현악 흐름을 먼저 구성하고, 그 위에 가야금 선율을 입혔다고 하더라고요. 음악 측면에서만 뭔가를 복잡하게 그려내기보단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 거였겠죠.
한편 어떤 분들은 이 곡의 끝부분이 너무 짧지 않으냐는 언급도 했어요. 카덴차 이후 뒤쪽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저도 손다혜 작곡가와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앞부분에 이미 충분한 이야기가 있는데 뒤에서 더 길게 끌면 앞쪽이 묻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끝부분에서는 무언가를 심판하듯이 끝내는 지금의 선택을 계속 이어갔다고 하더라고요.
또 재미있는 건, 원래는 카덴차가 지금 이 버전이 아니었어요. 연주하다 보니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달하는 이 부분이 너무 화려하게 손가락이 잘 돌아가는 식으로만 이루어지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손다혜 작곡가에게 카덴차 중간에 선율 부분을 네 마디만 추가해 보면 어떨지 제안했는데, 작곡가도 제 말에 공감해서 제가 딱 상상한 그런 느낌을 만들어줬어요. 아이를 타이르는 듯하면서도 애틋하고, 아름다운 부분이 만들어졌죠.
정말 단순한 음들이지만 그 부분을 연주할 땐, 꼭 아이에게 이젠 편안하게 쉬라고 말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확실히 그런 것 같아요. 이야기가 잘 그려지는 음악을 쓴다는 점에서요. 이건 저만 느끼는 건 아니고 함께 연주한 단원 선생님들도 같이 공유하는 이야기예요. 한편으론 아직 청년 작곡가인데도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가야금 중주곡을 관현악으로 편곡한 이건용 선생님의 ‘저녁 노을’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원일 전 예술감독이 있을 때 편곡한 건데, 이건용 작곡가 특유의 음악 색깔이 묻어나면서도 참 아름다운 곡이죠. 그다음으로는 김대성 작곡가의 ‘열반’이요. 이 곡은 편성을 달리해 몇 개의 버전으로 공개됐는데, 그중 관현악 버전에 참 멋진 가야금 가락이 있습니다. 가야금 파트에서 연습하느라고 고생한 기억이 있지만 선율이 참 근사했어요.
일단 전통의 색깔이 있어야겠죠. 그건 기본이에요. 거기서 파생되는 새로운 주법이나 리듬 같은 걸 활용하는 건 좋지만 전통을 눌러버리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 봐요. 물론 모험적인 곡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건 정말 높이 칭찬할 일이죠. 하지만 저는 이 전통적 요소를 더욱 멋있게 승화시키는 게 국립국악관현악단이 해야 할 일이자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실험적인 것도 좋지만 그와 더불어 곡에 담긴 메시지도 수용할 만한 것이었으면 좋겠고, 또 그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참 다르니까, 이 음악을 통해서 함께 대화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차근히 다가가는 게 나름의 숙제이지 않을까요.
국립국악관현악단에 들어오면서 수많은 곡을 연주했고, 인상에 남는 곡이 정말 많았어요. 그 모든 이야기를 하진 못했지만, 관현악에서만 얻을 수 있는 희열, 그리고 저 또한 개인적으로 이 악단 연주를 통해 승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어요. 앞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해나갈 텐데, 많은 분이 귀를 기울여주시면 저희도 힘을 받고, 나아가 좋은 작품이 나오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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