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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NT Live <시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한 밀러 걸작의 부활
KR EN
<시련>은 미국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가 1953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은 오늘날 전 세계 무대와 스크린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2022년, 연극 <차이메리카>(2014)·<햄릿>(2015) 등으로 주목받았던 연출가 린지 터너에 의해 영국 국립극장 무대에 올려졌으며, 이때의 공연 실황 영상을 NTOK Live+의 일환으로 국립극장에서 상영한다. 린지 터너 연출의 <시련>이 초연됐을 때 게재된 아래 리뷰를 통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어떻게 기여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1953년 뉴욕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시련>은 전쟁 이후 미국 정치를 휩쓸었던 광적인 편집증에 대한 아서 밀러의 응답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공산주의자들이나 그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당장 엑소시즘이 필요한, 악마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하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것이었다.
1692~1693년,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 살던 청소년들이 주도한 공개 지명과 무분별한 처형의 소용돌이는 결국 마녀로 몰린 수백 명을 교수대로 보내는 결과를 낳았다. 아서 밀러는 공화당 상원의원이던 조지프 매카시와 그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과거의 이 끔찍한 사건과 소름 끼치는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하지만 1956년, 런던에서 이 걸작이 초연되었을 때 비평가 케네스 타이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이제 이 작품을 단순히 반매카시즘적 작품이 아닌 집단 히스테리에 대한 철저한 연구라고 봐야 한다.” 위대한 작품은 그 작품이 쓰여진 시대상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며, 이것이 왜 현재에도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깨닫기 위해서 ‘캔슬 컬처1’의 전문가까지 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어떤 작품의 리바이벌 공연이라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잘 포장된 강의처럼 느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린지 터너 연출의 <시련>은 그 지점을 명확하게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을 대함에 있어 그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어수선한 부분을 걷어내고 절제된, 그러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기념비적 버전을 창조해 낸 것이다. 중요한 장면의 전환에 앞서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은 쏟아지는 물의 장막 뒤로 움직임을 덮는데, 이는 주위의 황량한 어둠에 의해 성경적 아름다움이 상쇄되는 효과를 준다.

1 캔슬 컬처 : Cancel Culture는 일종의 Call-out Culture(콜아웃 컬처, 망신 주기 문화)에서 파생된 행위로 단순히 어떤 사람을 망신 주는 것보다 유명인들, 특히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유튜버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 인사들이 현재 또는 과거에 잘못된 발언이나 행동을 할 경우(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범죄 행위 등) 그걸 SNS를 통해 알림으로써 그 사람의 경력을 파멸시키는 행위를 일컫는다. 즉, 단순히 ‘팔로우’를 취소하거나 구독을 취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과거 행위나 발언을 문제 삼아 앞으로의 경력을 망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사실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지목이 되는 경우도 있어서 이를 ‘마녀사냥’의 비슷한 행태로 보기도 하며 이때마다 아서 밀러의 <시련>이 언급되기도 한다.

청교도적인 믿음에 얽매여 서로에게 숨 막힐 정도로 밀접한 공동체의 기묘한 분위기를 교묘한 필치로 표현하며, 모두가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송가를 부르며 일제히 손을 드는 도입부는 이번 공연에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 집단적 충성을 서약하는 것 같은 모습에 관객은 마을의 분위기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일견 느닷없이 목사가 날린 손은 맨 뒷줄에 앉아 웃던 사람의 뺨을 가격하는데, 이는 에린 도허티가 연기하는 장난기 많은 애비게일 윌리엄스이며 그녀가 결혼한 농부 존 프락터와 불륜 관계였다는 점은 이 작품의 핵심적 장치다.
터너 연출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입힌 상처를 통해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세계의 선천적 폭력성을 압축해 보여주며, 그에 뒤따르는 것이 비뚤어진 복수심뿐만 아니라 억눌린 활기의 방출이라는 것조차 표현해 낸다.

조직적으로 협의된 자기 억제와 연극적인 자기 유기에 사로잡혀 상상 속의 존재에 홀린 채 두려움에 떠는 소녀들에게 급작스럽게 권력이 주어진다. 그리고 자신이 현시대 최고의 젊은 여배우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 작품에서 더욱 공고하게 증명하듯 도허티는 (<더 크라운>에서 연기한 앤 공주만으로도 부족함이 없거늘) 빈틈없는 계산과 걷잡을 수 없는 충동을 겸비한 주모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녀는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자신이 표적으로 정한 인물인 레이첼 디데릭스가 연기하는 매리 워런을 향해 악의에 찬 시선을 던진다.
절정에 이를수록 축적된 참혹한 감각의 비이성적 내부 논리와 집단적 사고가 구축되며 마을을 방문하는 당국 인사들의 가벼움과 무고하게 고발되어 쫓겨난 이들의 당혹감이 중첩되어 절망적이고 무력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극 초반에는 고요하지만 단호한, 마침내는 비참하게 무너졌지만 위엄을 유지하며 미친 행렬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하는 프락터 역의 브렌던 카웰의 연기가 빛나며 그의 곁에 3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모범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동료 배우들도 있다. 프락터의 상처 입은 아내 역의 에이린 월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한 판사 역의 매튜 마쉬, 그리고 자신의 세 번째 아내가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정을 파괴하기에 이르는 늙은 농부 자일스 역의 칼 존슨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영국 국립극장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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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NT Live 〈The Crucible〉
Gripping revival of Arthur Miller’s masterpiece
speaks to us with urgent force
KR EN
Erin Doherty confirms herself as one of our finest young actresses
in a magnificent restaging of the 1953 American classic

First staged in New York in 1953, The Crucible was – as is often noted – Arthur Miller’s response to the paranoia that swept post-war US politics, when Communists or those suspected of being so were treated as little less than devils in need of exorcism.

In the juvenile-led spasm of denunciation and execution that seized Salem, Massachusetts in 1692-3, which saw hundreds accused of witchcraft and many townsfolk sent to the gallows, Miller found a chilling correlative – and quasi-allegory – for the career-wrecking zeal of Republican senator Joseph McCarthy and his kind.

Still, even at the London premiere of the masterpiece in 1956, the critic Kenneth Tynan observed: “We can now judge [it] not as an anti-McCarthyite tract but as a devouring study in mass hysteria”. It moves with the times, and it takes no specialist in ‘cancel culture’ to see why the play might speak with urgent force today.

The key thing for any revival, though, is that it doesn’t feel too much like a lecture in disguise. This, Lyndsey Turner’s gripping revival at the National magnificently manages to do. It’s not as if she reinvents the piece, it’s more that she refreshes it, honouring the specificity but banishing clutter and creating an understated yet awe-inspiring monumentalism. Before each scene, designer Es Devlin wraps the action behind a curtain of lit falling water, the beauty of that biblical torrent offset by bleak surrounding darkness.

The suffocatingly close-knit community, bound by puritanical belief, is denoted in deft strokes, an added establishing scene showing the town worshipping and joining in hymn, hands rising in unisoned fealty to God above. A slap, delivered by the Reverend, lands on the face of a back-row giggler: Erin Doherty’s mischief-making Abigail Williams and the fulcrum of the drama because of her illicit romance with married farmer John Proctor.

In that casually inflicted hurt, Turner encapsulates the innate violence of this prim world, bringing home that what follows is a release of pent-up vivacity as well as a warped vengeance.

Power suddenly lies with the girls, who are forbidding in their coordinated self-containment and transfixing in their theatrical self-abandonment, at once possessed by and cowering from imagined spirits.

Doherty, confirming herself as one of our finest young actresses (as if her portrayal of Princess Anne in The Crown wasn’t proof enough), is perfect as the ring-leader, combining shrewd calculation with wayward impulse. She darts gleeful malevolent glances over at one target, Rachelle Diedericks’ recanting Mary Warren, even as she grimly convulses.

The evening builds an accumulating and harrowing sense of crushing internal logic and group-think; the credulity of the visiting authority figures combines with the bewilderment of those accused and carted off to create an engulfing atmosphere of total helplessness.

Brendan Cowell is initially rugged and still, finally wretched, broken yet dignified as Proctor, finding the means to refuse to march in step. Alongside him, over a fleet three hours, are other performances of exemplary detail: Eileen Walsh his quietly wounded wife, Matthew Marsh the insufferably arrogant judge, and Karl Johnson gently unforgettable as old farmer Giles, whose misgivings about his third wife reading books set in motion an act of domestic devastation.

The National at its best.

Until Nov 5. Tickets: 020 3989 5455; nationaltheatre.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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