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기행

조주선의 ‘심청가’ 강산제
30년의 소리 여정, 심청가에 담다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조주선 명창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 무대에 서는 명창(名唱)을 만나는 코너다. 완창(完唱), 판소리 한 바탕을 완주하는 것으로 짧게는 세 시간, 길게는 여덟 시간이 걸린다. 고수의 북 장단에 맞춰 오롯이 소리꾼의 기량으로 무대를 채우고 관객과 소통하는 완창 공연은 수십 년 수련한 소리꾼에게도, 그 객석을 채우는 관객에게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1984년부터 매달 이 특별한 무대를 이어온 국립극장은 2021-2022 레퍼토리시즌을 여는 첫 ‘완창판소리’ 공연으로 조주선의 ‘심청가’를 선택했다

명창 조주선의 남다른 소리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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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소리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조주선 명창을 서울 성북동에서 만났다. 소리꾼으로 살아온 지 30년이 넘었건만 ‘소리’를 찾기 위한 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폭포수 아래, 피를 토하는 득음(得音)은 이미 하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이번에 간 곳에 폭포는 없었어요(웃음). 그런데 ‘득음을 했다’고 언제 말할 수 있을지. 소리를 얻는다는 게… 소리는 하면 할수록 어렵거든요.”

애초에 소리 길로 들어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국무용과 가야금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판소리는 중학생이 돼서야 시작했다. 타고난 목이 약해 여러 차례 성대결절에 소리꾼의 음색이 아니라는 평까지 받으며 모두가 막아서는 길을 그녀는 뚝심 있게 걸어왔다. 뒤늦게 소리를 시작한 만큼 또래들이 가요나 팝에 빠져 있을 때 국악만 팠고,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판소리를 듣고 또 중얼거렸다. 덕분에 한양대 국악과와 대학원에서 판소리를 전공하고, 국립국악원 전국국악경연대회 대상과 남원춘향제 전국 판소리 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등을 휩쓸고, 대한민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 등 숱한 무대에서 유려한 소리를 뽐냈건만, 아이러니하게도 ‘득음’이라는 단어는 갈수록 어렵게 느껴진단다.

“20대까지만 해도 선생님(성창순-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 보유자)이 너무 무서워서 계속 판소리만 들었어요. 선생님과 똑같이 완벽하게 하려고요. 열심히 했고, 오래 했고, 그래서 똑같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예전에 그렇게 듣던 선생님 음반에서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는 만큼만 들린 거죠. 완성이라는 게 내가 아는 데까지 하는 것이지 완벽하게 소리를 얻는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또 서양음악은 고정된 피치에서 음을 사용하지만 판소리는 그렇지 않거든요. 음감도 사람마다 다르고. 그러니까 지금은 맞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다르게 들릴 수 있고. 판소리만 하면 괜찮은데, 클래식이나 재즈, 가요 등과도 접목하다 보면 음이 높아지거나 안 맞는 음정들이 있어요. 그러니 그 득음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죠.”

동경하던 국립극장 무대에서 스승께 바치는 ‘심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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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의 2021-2022 레퍼토리시즌을 여는 첫 ‘완창판소리’ 공연은 조주선의 ‘심청가’다.

“굉장히 부담되죠. 게다가 국립극장 완창은 처음이라 솔직히 잘하고 싶잖아요(웃음).”

국내에서 국립극장이 처음으로 시작한 완창 무대, 그만큼 소리꾼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데 국립국악원은 물론 외국에서도 완창을 선보인 조 명창의 경우 유독 국립극장 무대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 무대에서 공연하시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그래서 더욱 동경했는데, 이번에 선생님이 문화재로 인정받으신 ‘심청가’로 국립극장 무대에 서니까 감회가 새롭죠. 선생님이 2017년에 돌아가셨어요. 이제 제가 선생님께서 오르셨던 그 무대에서 ‘심청가’를 마음껏 해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심청가’ 완창의 경우 러닝타임이 대략 4시간. 나이가 더해 갈수록 깊어지는 소리에 반해 약해지는 체력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녀 역시 평소 운동을 벗 삼고, 몸이 피곤한 일은 만들지 않으며, 잘 자고 나쁜 음식은 먹지 않는 등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물론 소리는 힘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무턱대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선생님이 ‘멍청하게 뭐 한다고 소리를 그렇게 죽어라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또 한창때는 청을 높게 잡고 하나도 안 틀리면 무척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소리다냐?’ 하셨어요. 결혼해서 아기도 낳고 이런저런 것도 겪어봐야 소리의 속을 안다고.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에 와닿는 건 깊이가 다르더라고요. ‘심청가’의 경우 70퍼센트가 슬픈 내용인데, 창자가 너무 울어서도 안 되고 너무 기뻐해서도 안 돼요. 완창의 경우 한 지점에서 감정을 너무 폭발해 버리면 그다음이 힘들거든요.”

소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판소리 다섯 바탕(수궁가·심청가·적벽가·춘향가·흥보가)은 모두 익숙한 이야기지만, ‘심청가’는 더욱 친숙하다.

“부모·효·죽음 등은 세상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만나고 겪게 되잖아요. 그래서 판소리 사설(창을 하는 중간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엮어나가는 이야기)이 어려운데, ‘심청가’는 창자(창을 하는 사람)가 좀 고생하면 드라마로 엮을 수 있어요. 우리가 평소 마음껏 울고 웃기가 쉽지 않은데, 소리 속에 들어와 앉아 있으면 우리 엄마나 내가 겪은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동네 아줌마 같은 소리꾼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거든요. 30분 정도의 어색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죠. 그래서 완창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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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의 의미 있는 외도

조주선 명창은 지금껏 소리를 찾아가는 긴 여정에 새로운 길을 접하기도, 또 다른 길을 만들기도 했다. 일단 시대의 큰 흐름이 한몫을 담당했다. 요즘 MZ세대가 화두라면 1990년대에는 X세대가 신세대를 대변하며 사회 전반에서 주목받았다. 문화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악인은 무대에서 판소리만 하고, 제자들은 명창들을 따라만 다녔다면 90년대에는 그 틀이 훨씬 유연해지고 다채로운 시도가 허용됐다.

“역대급 운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X세대’라는 타이틀 때문에 20대에 다양한 길이 열렸어요. 당시 방송 3사의 음악 방송에서 모두 섭외가 들어왔는데, 전통적인 판소리뿐만 아니라 국악가요, 협연, 창작곡 등 다양한 노래를 할 수 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저의 경우 판소리하는 사람들이 쳐주는 대명창의 목은 아니라고 했는데, 다른 색의 소리가 인정되는 시대가 열린 거예요.”

그녀가 판소리 스타일로 부른 김민기의 ‘밤뱃놀이’, 이정선의 ‘고향길’ 등은 그렇게 큰 인기를 얻었고, 이전과는 다른 소리꾼의 독특한 무대는 또 다른 무대로 연결됐다. 선생님들은 그런 행보를 대놓고 싫어했고, 튀고 싶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나름의 소신이 있었다.

“외로운 음악가가 되기는 싫었어요. ‘내가 하는 음악이 이렇게 좋은데 사람들은 왜 모르지?’ 너무 안타까웠거든요. 방송에서 제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판소리 잘 들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듣다 보면 정통 판소리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클래식·힙합·재즈와 우리 소리를 접목할 때도, 유럽 재즈 그룹이나 체임버 앙상블과 함께 공연할 때도 그녀의 생각은 같았다.

“저는 한 번도 소리꾼이 아닌 적이 없어요. 창작곡을 부를 때도 판소리 대회에 나갔고, 판소리 발표도 계속했어요. 대중에게 국악을 더 알리고 싶었지, 또 다른 장르를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14년 전부터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조 명창은 ‘소리의 대중화’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한다. 한국무용에서 시작해 가야금, 판소리, 수많은 새로운 시도를 직접 단행해 본 경험을 토대로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학생들을 독려한다.

“아이들에게 머물러 있지 말라고 해요. 요즘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시도를 많이 하잖아요. 달란트가 있으면 도전하라고. 다만 전통을 놓지 않아야죠. 소리꾼이 다시 소리를 하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없다면 너무 불행하잖아요.” 그녀의 소리 여정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소리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우리 음악이 이렇게 귀하고 좋은데 너무 좁은 지역에, 다섯 바탕에 매여 있다는 게 안타까워요. 완창 무대를 찾는 분들은 소수잖아요. 더 많은 사람이 소리를 즐기려면 제가 부르는 노랫말을 이해하고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판소리 자체만으로는 힘들겠죠. 판소리 창법을 유지하되 새로운 가사를 얹고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데… 쉽지 않은 숙제지만 언젠가는 잘 풀어보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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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명창의 귀한 소리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조주선의 심청가’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판소리 한 바탕 전체를 감상하며 그 본연의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최초·최장수·최고의 완창 무대다. 1984년 시작된 이래, 박동진·성창순·박송희·성우향·남해성·송순섭·안숙선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올랐던 꿈의 무대로 전통에 대한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며 소리 내공을 쌓고 있는 소리꾼들이 매달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번 공연은 현존하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슬픔을 토로하는 대목이 많은 ‘심청가’를 조주선 명창 특유의 애절한 소리로 감상할 수 있어 더욱 기대를 모은다. 명고 김청만과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상임단원 조용복이 고수로 함께하고, 지난 상반기 ‘완창판소리’에 이어 판소리 연구가 배연형이 해설과 사회를 맡아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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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선
現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교수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
민속악회 시나위 단원, (사)한국판소리보존회 이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단원 역임
사사
김흥남·성창순·오정숙·안숙선·김수연·김일구
수상 내역
2008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3 국립국악원 주최 전국 국악경연대회 대상
1999 남원 춘향제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대상
글. 윤하정 사직서 내고 유럽 공연 기행 떠난 전 방송기자, 공연 전문 인터뷰어. 투어 이후에도 ‘유럽여행’ ‘문화예술’을 키워드로 말하고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을 펴냈다
사진. 박정훈 사진작업실
프로필 사진. 나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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