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기하나

여우락 페스티벌 리뷰
여우락 페스티벌이 남긴 몇 가지 질문

매년 여름, 장충동으로 향한 지도 10년이 훌쩍 흘렀다. 그간 여우락 페스티벌의 면면도 조금씩 변화해 왔는데, 올해는 여러 측면에서 예년과 달랐다. 먼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됐던 몇몇 공연이 대면으로 진행되며 관객들과 만났다. 또한 예술감독과 음악감독이 분리된 이원 체제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인 체제로 운영되면서 페스티벌의 지향점이나 색깔이 명료해졌다. 마지막으로 극장 공간을 운영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기존의 여우락 페스티벌은 대부분 하늘극장과 달오름극장에서 펼쳐졌지만 올해는 별오름극장에서도 공연이 진행됐다. 별오름극장에서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콘셉트가 다른 소규모 음악회가 진행돼 음악가들의 연주와 호흡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다. 한 달간의 여정 속에서 공연이란 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은 음악가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감동했고, 때때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심지어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여우락 페스티벌의 장면을 다시 되짚어 보면서 그 속에서 건져 올린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한다.

극장에서 무엇을 하는가?

여느 해보다 극장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단순히 음악가가 무대 위에 등장해 연주를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극장 공간에 무엇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궁리해 여러 가지 구상을 시도한 듯했다. 공연의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흐름을 가질 수 있도록 공을 들인 것이다. 물론 각각의 무대마다 지향점이 조금씩 달랐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마다 편차가 있기 때문에 모든 전략과 시도가 설득력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밀도 높은 고민이 수반됐다.

‘두 개의 눈’ 공연 사진 ‘두 개의 눈’ 공연 사진

특히 개막작에서 이러한 기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무토(MUTO)와 입과손스튜디오가 협업한 ‘두 개의 눈’은 시원하고 압도적인 장악력을 보여줬다. 판소리 ‘심청가’를 맹인 심학규의 처지에서 다시 풀어낸 작품으로, 무토(MUTO) 특유의 서정적이면서 부유하는 듯한 음악과 극장을 장악하는 미디어아트가 특징적이었다. 덕분에 모든 출연자가 연주에만 몰입하고 많은 움직임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스펙터클이 구현될 수 있었다. 박순아·여성룡·강해진·김성배가 참여한 ‘찬:찬란하길 바라며’에 마련된 ‘두 개의 객석’도 일련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의 객석은 여우락 페스티벌을 관람하러 온 관객을 위한 자리다. 다른 하나는 1980년대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영혼을 위한 수십 켤레의 신발이다. 정렬된 신발은 또 다른 객석을 은유하는 것이다. 이 공연은 (구)국군광주병원의 소리를 담은 박순아의 앨범 ‘찬(燦, Become Radiant)’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박순아의 음악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누구를 기억하기 위한 것인지 보여주는 장치를 도처에 마련하고 있었다.

‘찬:찬란하길 바라며’ 공연 사진 ‘찬:찬란하길 바라며’ 공연 사진

‘접신과 흡혼’은 황해도 만신 이해경과 사진작가 강영호가 협업해 만들어낸 새로운 굿판으로, 작년 온라인 생중계에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공연의 전략도 위의 두 작품과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 이해경은 무대 위에서 굿을 하고, 강영호는 이해경의 신체 곳곳과 무구를 찍어 무대 뒤의 커다란 화이트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투사한다. 관객은 공연 초반에 강영호의 퍼포먼스와 그가 찍은 사진에 시선을 빼앗기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며 점차 이해경의 오라(aura)에 몰입하게 된다. 굿의 문법을 알지 못하는 공연 ‘바깥’의 관객을 공연의 ‘안’으로 깊이 포섭할 수 있었던 건 이해경이라는 만신이 지닌 능력 덕분이다. 이해경은 관객들로 하여금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게 만들고, 그들을 공연의 주체로 만든다. 장시간 이어진 기립 박수는 오로지 자신의 신체로 극장을 장악한 이해경의 힘이 관객에게도 전달됐다는 의미일 것이다.

‘접신과 흡혼’ 공연 사진 ‘접신과 흡혼’ 공연 사진
솔리스트가 마주한 질문은 무엇인가?

올해 음악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흐름은 솔리스트의 약진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팀으로 활동하는 음악가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음악가가 대폭 늘어났다. 심은용·황진아·박다울이 의기투합한 ‘고고고’는 현재 국악계에서 주목받는 거문고 연주자가 어떤 음악을 하는지 살펴볼 기회였다. 공연은 각자의 레퍼토리를 조금씩 변형해 이어놓은 형태였다. 타악 연주자 고명진도 자신의 서사를 바탕으로 혼자서 ‘나들’이라는 무대를 꾸렸다. 국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가 홀로 연주할 때 하게 되는 고민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에는 공통점이 존재하는 듯했다. 루프 스테이션(loop station)을 사용해 중요한 패턴을 반복하고 음악의 층위를 점차 확대하거나 미디(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를 적극 활용하는 식이다. 이러한 시도의 성패를 성급하게 판단하기보다 일련의 음악적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 좀 더 집중하고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고고’ 공연 사진 ‘고고고’ 공연 사진
  • ‘나들’ 공연 사진 ‘나들’ 공연 사진

반면 아쟁 연주자 김용성과 가야금 연주자 박선주의 ‘실마리’는 음향의 인위적인 제어나 증폭 없이 악기 특성을 온전히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협업에 방점을 둔 페스티벌의 기조와도 맞아떨어졌다. 관객의 신체뿐만 아니라 극장의 문법도 계속해서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시대에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무대는 무척 귀중하다. 두 음악가 모두 솔리스트로서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분명히 드러냈고,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특별한 과잉이 없었다. 누에고치와 물레를 사용해 직접 실을 뽑고 악기에 줄을 맨 뒤 조율하는 과정까지 보여주면서 이제 막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한 음악가의 ‘기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부의 달음’ 공연 사진 ‘두부의 달음’ 공연 사진

달음은 가야금·거문고 듀오로, 극장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 많은 고민을 한 팀이다. ‘두부의 달음’은 두부를 만드는 과정과 달음의 레퍼토리를 병치하면서 시·청각만큼이나 후각이 중심이 되는 공연을 진행했다. 두부를 만들 때 생기게 마련인 기다림을 연주로 채워 넣는 방식을 선택했다. 1시간 남짓한 공연의 부피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음악회의 포맷을 어떻게 구상할 것인지와 같은 고민은 솔리스트 혹은 구성원이 적은 팀이 당면한 과제다. 올해 여우락 페스티벌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음악가마다, 극장 공간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음악가끼리의 협업은 여전히 숙제로 남은 듯 보였다. 같은 장르의 예술가가 만나 협업할 때 그 조건은 훨씬 더 까다롭다. ‘녹아 든다’는 표현이 가능할 정도의 협업은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서로 다른 음악의 문법을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해파리의 ‘딥 씨 크리처(Deep Sea Creatures)’처럼 이미 신뢰하는 시각예술가 고스트 샷건(Ghost Shotgun)과 픽(.pic)을 협업자로 선택하는 경우에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협업자가 음악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추다혜 차지스의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처럼 협업자인 만신 이찬엽과 완벽하게 분리된 단독 무대를 선보이는 경우에도 큰 문제가 없다. 두 팀 모두 자신의 중요한 본체를 지켜내면서 독창적이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딥 씨 크리처(Deep Sea Creatures)’ 공연 사진 ‘딥 씨 크리처(Deep Sea Creatures)’ 공연 사진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공연 사진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 공연 사진
‘나와 일로’ 공연 사진 ‘나와 일로’ 공연 사진
‘물을 찾아서-Remastered’ 공연 사진 ‘물을 찾아서-Remastered’ 공연 사진

강권순과 송홍섭앙상블 그리고 신노이가 함께 선보였던 ‘나와 일로’나 음악그룹 나무의 ‘물을 찾아서-Remastered’에서는 빼어난 기량과 무대 매너가 일품이었다. 관객들과의 호흡을 통해 물 흐르듯 재치 있게 공연의 흐름을 주도하는 여유로움은 이들이 베테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여기에 덧붙여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나 ‘바람곶’ 오마주라는 협업의 이유를 좀 더 촘촘하게 설득해 나갔다면 훨씬 좋은 공연이 됐으리라 생각된다. 신박서클과 윤석철의 ‘불안한 신세계’, 공명과 이디오테잎이 협업한 ‘공TAPE_Antinode’는 전형적인 콘서트 포맷을 갖추고 있었지만 둘의 만남이 왜 이루어졌는지, 어떠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인지 명료하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반적으로 각자 지향하는 음악의 장르나 음악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변별될 때 협업의 조건은 훨씬 까다로워진다. 연주자들은 적정선 이상의 퀄리티를 담보한 공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감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조하는 정도의 협업이거나 국악기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음향적으로 불리한 요소를 소거하는 방식의 협업은 최대한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여우락 페스티벌을 찾는 이유는 국악계의 새로운 시도와 좋은 협업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시도의 당위를 치열하게 고민한다면 훨씬 더 견고한 페스티벌이 되리라 믿는다. 올해는 그 출발점에서 몇 가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글. 성혜인 음악평론가. 전통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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