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국립창극단 ‘흥보展(전)’ 김명곤 연출, 최정화 시노그래퍼, 박승원 음악감독 인터뷰
우리 시대 거장들이 빚어내는 ‘삐까뻔쩍’ 판타지쇼
9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2021-2022 레퍼토리시즌 개막작들로 정식 재개관을 선포한다. 국립창극단이 내놓는 무대는 ‘흥보전’이다. 살짝 갸우뚱하게 된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착한 전래동화 스토리에, 한국 공연계 전설적 인물인 제21대 국립극장장 허규의 1998년작 ‘흥보가’를 원작 삼고, 심지어 김명곤 연출, 안숙선 명창이라는 ‘살아 있는 전설’들로 창작진을 꾸렸다니. 과연 새 극장에 걸맞은 새로운 무대가 될까

김명곤 연출가는 걱정 붙들어 매라고 했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최정화가 시노그래퍼로, 퓨전국악그룹 공명 멤버인 박승원이 음악감독으로 힘을 보탠 무대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줄 것이라고 큰소리 ‘뻥뻥’ 친다. 제비가 물고 온 박씨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진다는 조상님들의 역대급 ‘뻥’을 살아 있는 뻥쟁이들이 세상 유쾌하고 희한한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는 것이다. “판소리 흥보가를 소리와 설치미술이 뒤섞인 기상천외한 미디어아트 전시회처럼 풀어낼 테니 다같이 텐션 올려 즐길 준비하라”는데, 사실 감이 잘 안 온다. ‘2021년판 창극 흥보展(전)’ 창작진으로서 화두로 삼았을 법한 키워드 몇 가지로 세 사람의 속내를 풀어내 봤다.

흥보展(전)과 나

연출 김명곤 내가 박초월 명창한테 처음 배운 게 흥보가였어요. 그런데 이번에 샅샅이 훑어보니 그렇게 만만한 작품이 아니더군요. 잘 만들면 굉장히 판타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재인데, 이 판타지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 고민하다 제비나라 세계관을 설정했어요. 제비여왕이 만들어내는 판타지한 이야기에 제비의 군무, 제비의 합창이 스펙터클하게 관객을 사로잡을 겁니다.
음악감독 박승원 내가 알고 있는 흥보전은 형제간 우애나 놀부의 탐욕을 꾸짖는 권선징악 이야기였는데, 다르게 볼 수도 있더군요. 연출님이 설정하신 제비나라 세계관 덕에 경계선이 확장됐달까요.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인들이 공감하는 글로벌한 흥보전이 될 것 같아요.
시노그래퍼 최정화 내 평소 신조가 생활예술이거든요. 작업 자체가 삶의 흔적, 찌꺼기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고, 생활이 예술이 되는 놀이터라는 표현도 자주 쓰는데, 딱 흥보가가 그래요. 우리 옆에 있던 이야기잖아요. 사실 전통 소재 예술은 다 그렇죠. 원시 예술부터 디지털 예술까지, 원래 예술은 놀이였으니까요. 판소리·창극도 원래 누구나 즐기는 것인데, 현대미술과 어떻게 만나게 할까. 이 지점에 제 역할이 있을 것 같아요.

동시대성

시노그래퍼 최정화 전통은 지금도 쓰고 내일도 써야 전통이 되거든요. 안 쓰고 박물관에만 있으면 전통이 아니죠. 사실 박물관에 있는 술잔에 술을 마셔야 돼요. 그래야 어제·오늘·내일이 완전히 하나가 되죠. 어제·오늘·내일이 직선이 아니라 엉킨 실타래 속에서 뽑아 써야 판타지가 될 수 있는데, 뽑는 주인공은 관객이 될 거예요. 여기서 전문가들의 역할은 한정식 밥상을 차리는 것이고, 수많은 재료와 감각의 향연 속에서 관객이 잘 골라 먹기 바랍니다.
음악감독 박승원 음악은 안숙선 선생님의 작창이 워낙 완벽한데, 전통악기와 서양악기가 만나서 하모니를 이루는 음악적 구성을 고민했어요. 각국 제비들이 등장하는 부분에 첼로와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가 들어와서 서양 분위기의 음악도 만들고, 창극단 기악부 전원이 참여해서 오케스트라 피트를 꽉 채우는 규모가 될 겁니다. 하지만 전통을 생활에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듯이 판소리를 전통 어법 그대로 오롯이 들을 수 있는 순간도 있습니다.
연출 김명곤 ‘보은과 복수’의 박씨가 아닌 ‘사랑과 용서’의 박씨를 만들겠다는 게 철학이랄까요. 착한 흥보, 나쁜 놀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헛된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착실하게 살려던 흥보가 느닷없이 박에서 돈과 쌀이 나오니 부를 과시하는 모습을 보면 좀 우스꽝스럽지 않나요. 누구나 가진 욕망의 파노라마를 시각화하기 위해 그 표현은 굉장히 현대적으로 갈 겁니다. 모든 비주얼이 매우 파격적으로 모던하죠.

최정화 시노그래퍼, 김명곤 연출, 박승원 음악감독 (왼쪽부터) 최정화 시노그래퍼, 김명곤 연출, 박승원 음악감독 (왼쪽부터)
흥보傳(전) 아닌 ‘흥보展(전)’

연출 김명곤 제목을 ‘흥보展(전)’이라고 붙인 건 최 작가의 작품이 무대 위에 중요한 대도구로 쓰이고, 미술작품이 창극의 무대와 서로 만난다는 의미예요. 전통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핵심적 모티프를 매우 현대적인 미디어아트로 펼쳐 보일 겁니다.
시노그래퍼 최정화 지금 예술의전당 ‘불가리 컬러 전시회’에 설치된 제 작품 ‘세기의 선물’을 놀부 집에 갖다놨거든요. 실제로도 여러 놀부가 그걸 사서 댁에 갖다놨는데, 재밌지 않나요. 원래 출발은 한국 예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기둥이거든요. 진짜 로마 기둥이 아니라 우리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서양 조각을 흉내 내서 비웃음으로 돌려주는 작품인데, 그걸 놀부들이 사고, 또 유럽 최고 명품과 같이 전시되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가요. 풍자를 이해 못하고 그저 ‘삐까뻔쩍’하다고 좋아하니까 놀부인 거죠. 잘사는 게 무엇인지를 묻는 무대지만 설명은 없을 겁니다. 관객이 주인공이 돼서 스스로 판단하고 챙겨 가야 하니까요. 소리부터 영상·대도구·소도구·의상까지 총체적인 다원예술이고, 어마어마한 LED패널이 움직이면서 공간 자체를 미디어월로 만드는 특별한 무대가 될 겁니다.

흥보展(전)의 클라이맥스, 박타는 대목

시노그래퍼 최정화 애드벌룬으로 만든 박을 16×4m짜리 거대한 톱이 내려와서 빵 터뜨리죠. 눈대목 중 하나인 ‘돈타령’은 흥보가 ‘머니건(money gun)’으로 돈을 날리며 유쾌하게 표현할 겁니다.
음악감독 박승원 놀부 박타는 대목은 원래 여사당패가 나와서 콩타령·개구리타령·까투리타령 같은 민요를 부르거든요. 푸짐하게 놀면서 놀부한테 돈을 알겨내는 장면인데, 민요를 힙하게 편곡해서 걸그룹 이미지까지 만들어볼 겁니다.
연출 김명곤 박에서 돈이 나오고 쌀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판타지인데 현실적으로 그걸 욕망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아예 까놓고 이건 판타지라고 한바탕 쇼를 보여줄 겁니다. 모든 배우와 관객이 요란뻑적지근하게 거침없이 놀고 갔으면 해요. 창극이 이렇게 흥겹고 재밌을 수도 있구나 싶게, 빠른 호흡으로 유쾌하고 경쾌하게 끌고 갈 겁니다.

관전 포인트

시노그래퍼 최정화 소셜미디어를 위한 공연이에요. 사진을 못 찍게 해도 관객이 찍을걸요. 지금은 손끝부터 발끝까지 디지털 세상인데, 디지털(digital)의 어원은 라틴어 디지투스(digitus), 손가락이라는 말에서 유래했거든요. 소리부터 LED 모니터, 의상까지 전부 다 손가락으로 만지고 싶을 거예요. 원자재가 살아 숨 쉬면 요리는 관객들이 하겠죠. 그렇게 미래의 기억을 만들어내면 앞으로 또 다른 버전의 흥보가가 나올 겁니다.
음악감독 박승원 ‘흥보展(전)’이라는 단어에서 총체적인 다양한 이미지를 기억할 거라는 희망과 함께 오실 텐데, 그 기대에 부족하지 않은 무대가 될 겁니다. ‘폼나게’ 클래식적인 걸 경험하는 게 아니라,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로 경쾌하게 마무리되도록 음악적으로도 잘 살려야죠.
연출 김명곤 동화 같은 거짓말이잖아요. 시침 뚝 떼고 뻥치는 건데, 조선 최고의 뻥쟁이들이 만든 옛날이야기를 현대의 뻥쟁이 김명곤이 어떻게 풀어냈는지, 즐거운 마음으로 깔깔 웃으러 왔으면 해요. 진지한 해석은 필요 없죠. 어차피 이게 다 제비나라에서 만들어낸 뻥인 걸요.

창극의 묘미

시노그래퍼 최정화 모든 예술에서 소리의 역할이 제일 중요해요. 모든 것의 시작이 소리죠. 언어 이전에 소리가 있고, 상형문자처럼 소리를 옮긴 게 시각예술의 출발이거든요. 더군다나 판소리는 생활 속에서 나오는 소리였잖아요. 우리 DNA 속에 있는 걸 건드리기에 확 빨려드는 것 같아요.
연출 김명곤 우선 집단성이 다른 매력입니다. 뮤지컬, 오페라가 한 사람의 작곡가가 만들어내는 음악 세계라면, 창극은 집단창작과 같은 방식으로 전해져 온 옛 명창들의 음악성이 녹아 있어요. 악보화가 되지 않은 음악이 가진 즉흥성도 굉장한 강점입니다. 이걸 더 살려내는 방향으로 가야지 서양식 작곡 개념으로 틀 속에 가둔다면 그 매력이 사라지겠죠.
음악감독 박승원 즉흥성을 열어둘수록 창작이 진화하는데, 전통음악도 그렇게 진화했죠. 수많은 음을 응축하고 있는 전통음악의 5음계도 중요해요. 서양의 화성 개념으로 풀 수 없는 미분음적인 요소들도 다 살아 있거든요. 그들이 12색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우리는 36색으로 그리는 차이랄까요. 판소리나 창극이 낯선 관객일지라도 이런 새로운 작품들은 꼭 한번 볼만하다고 생각해요. 전통을 오래된 옛날 것이라는 생각에 가두고 있으니 제대로 경험조차 할 수 없는 건데, 창극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내려놓고 봤으면 좋겠어요.
연출 김명곤 김치 담글 때 고춧가루 몇 그램 넣으라는 레시피대로 한다고 맛이 나나요. 창극은 엄마 손맛이죠. 악보와 작곡의 개념으로 창극을 분석하면 그 맛을 모르게 돼요. 국악에는 악보에 가둘 수 없는 표현이 있고, 더구나 판소리는 표기 불가죠. 표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미묘한 표현을 해내는 명창의 기량이 얼마나 위대한가요. 그게 국악의 맛입니다.

글. 유주현 ‘중앙SUNDAY’ 공연 담당 기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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