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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다섯 오’ 손인영 예술감독 인터뷰
그래서 다시 자연이요, 순리의 이야기다
음양오행으로 풀어낸 환경문제,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초래한 재앙을 춤으로 구현하는 작업.
‘다섯 오’는 미래를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자연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다. 전 세계를 덮친 역병도,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도 인간의 이기심이 빚어낸 것으로 고스란히 화(禍)가 돼 인간에게 돌아왔다. ‘순리’라는 궤도를 이탈한, 일방적인 착취의 끝은 어떠했나. 각종 질병과 재해가 사방에서 밀려왔고, 감당 못 할 수준의 재앙은 인류 삶 곳곳을 덮쳤다. 그래서 다시 자연의 순리를 이야기하려 한다. 동양의 전통 사상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통해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진리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가르침을 확인하는 무대.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선보이는 신작 ‘다섯 오’다. 안무를 맡은 손 예술감독은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을 두루 섭렵한 무용가로 두 장르의 안무 요소를 결합한 ‘현대적 한국무용’을 펼쳐낼 예정이다. 무대 준비가 한창인 국립극장에서 만난 손 예술감독은 “하나의 공연이 당장 큰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지 않으냐”라면서도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한 번의 계기, 화두를 제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국립무용단 손인영 예술감독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연의 순리’라는 소재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작품 구상은 사실 미세먼지 때문에 시작했다. 어릴 때 경험한 적 없는 현상 앞에서 ‘왜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빠졌고, 언젠가 이런 고민을 춤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미세먼지를 비롯한 다른 환경문제도 함께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즈음 코로나19가 터졌다. 코로나 상황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데, 어쩌다 보니 시기적으로 작품의 주제와 상황이 맞물리게 됐다.

오행의 다섯 원소, 목·화·토·금·수를 어떻게 시각화할지도 궁금하다.

일단 각 요소의 속성을 살리려고 한다.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나타내는 나무(木)에서는 새싹이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는 장면을 보여줄 계획이다. 흔들리는 나무, 꺾인 나무, 굽은 나무… 동작의 변주도 다양하게 가져간다. 불(火)은 화려하고 완숙한 느낌이다. 승무에서 영감을 얻어 강렬하고 사방으로 발산하는 에너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 불을 식히는 존재요 죽음을 의미하는 물(水)은 씻김굿에서 중화와 균형, 삶의 터로서의 흙(土)은 택견과 지신(地神)밟기에서 영감을 얻어 안무했다. 마지막 금속(金)은 강인한 힘을 나타낸다. 곡괭이로 밭을 일구는, 남성적인 에너지를 한껏 드러내는 강렬한 춤사위로 표현하려고 한다.

이 오행이 순환함으로써 가능한 게 음양의 조화다. 각 세계가 생기고 또 사라진 자리엔 남녀의 만남과 사랑, 합치가 이어지고, 조화를 이룬 둘은 거대한 자궁으로 들어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알린다. 생성과 소멸, 죽음과 탄생이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 이것이 손 예술감독과 ‘다섯 오’가 말하고자 하는 순환이요, 자연의 순리다.

3막은 다시 현실로의 복귀다. 오행의 세계를 둘러보고 돌아온 인간에게 무엇이 남아 있을까.

1막이 문제의 인식, 2막이 흐름에 대한 이야기라면 3막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 그래서 3막은 막춤까지 등장하는 축제다. 음양오행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지고 현대사회로 돌아와 그 흐름을 되찾는다면 그것은 조화의 축제 아니겠는가. 지금을 즐기지 못하고 경쟁에 매몰된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이 파괴된 환경이다. 막혀 있던 우리의 감정과 열정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다시 흐르게 하자는 의미에서 웃고 춤추는 축제의 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한바탕 축제가 끝난 자리에 홀로 남은 사람과 그이의 몸짓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후세에 어떤 세상을 전해 줘야 하는가’ 같은 질문과 당부를 전하고 싶었다.

주제를 전달하는 ‘이야기의 틀’이 음양오행이다.

환경문제를 어떻게 무대화할지 제작진과 논의하다가 음양과 나무(木)·불(火)·흙(土)·금속(金)·물(水)의 오행으로 풀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음양오행은 우주 만물이 음과 양, 그리고 다섯 원소로 구성돼 있다고 보는 동양의 전통 사상이다. 우리가 오늘날 직면한 문제들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결과임을 음양오행의 시각에서 조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은 ‘현재의 파괴된 환경-음양오행 세계의 탐구-다시 현재에 서서 미래를 보다’로 구성된 총 3막 구조다. 음양오행의 세계는 각 원소의 특색을 살린 몸짓으로 무대 위에 구현된다. 관객을 음양오행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로 ‘처용’이 등장한다. ‘처용’ 하면 악운·악귀를 쫓는 벽사 의식이 먼저 떠오르는데, 처용이 지닌 그런 이미지, 즉 인간의 문제를 귀신이 해결해 준다는 식의 접근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다고 본다. 벽사 의식에 집중하면 결국 신의 영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이건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섯 오’에서 ‘처용’은 동양적 자연관을 상징하는 존재다. ‘처용’의 안내로 오행의 흐름을 보여주고, 그 흐름이 끊겨서 상실된 자연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드러나도록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손 예술감독에게 음양오행과 처용은 익숙한 춤의 소재요, 언어다. 그는 신라 시대 처용 설화와 궁중무용 처용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창작무용 ‘아바타 처용1·2’로 호평받은 바 있다. 이때도 음양오행의 기본 정신을 기초로 한 ‘오방처용’을 등장시켜 각 처용의 속성을 다양한 춤사위로 표현하며 현대 문명의 이기와 인간 삶을 조명했다.

‘다섯 오’가 관객에게 어떤 작품으로 가닿길 바라는지.

먼저 국립무용단은 내가 단원으로 활동한 곳이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단원들과 함께 작품을 올리게 돼 그 울컥하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예술가가 관객에게 “이 작품을 이렇게 봐달라”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섯 오’를 한번 봤다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변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계기가 쌓이고 뭉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한 번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면, 국립무용단이 국공립예술단체로서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든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욕망만 좇는 개인(‘신데렐라 되기’), 휴머니즘 부재의 시대에 다시 보는 나눔의 정신(‘흥부’)… 손 예술감독은 그동안 기술·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꼬집는 작품을 다수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의 무대가 의미 있는 것은 날카로운 비판 의식에만 있지 않다. 친숙한 이야기의 틀을 빌려 ‘함께 생각하고 다음을 모색하는 장’을 구현해 왔기에 안무가 손인영의 언어는 관객과 통했고, 그 자체로 위로가 됐다.

냉철한 반성과 함께 따뜻한 위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손인영 예술감독과 국립무용단이 선보일 ‘다섯 오’ 무대가 기대되는 이유다.

글. 송주희 ‘서울경제’ 기자. 2008년 2월 입사해 사회부·증권부·문화부·정치부를 거쳤다. 여전히 더 많은 무대를 보고 듣고 배우고 싶다
사진. 황필주 STUDIO79
*월간미르 2020년 9월호 깊이보기 기사를 재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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