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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개화, 피어오르다’ 프리뷰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음악 축전’
새 단장한 해오름극장에서 듣는 최초의 서양 관현악

9월 2일 목요일 저녁,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은 조금 다른 색채의 음향으로 가득 채워질 예정이다. 극장의 재개관을 기념하며 서양 관현악단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홍석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상주해 온 만큼 오랜 시간 해오름극장은 주로 한국 전통악기의 소리와 공명해 왔다. 물론 한국 전통악기와 서양 전통악기가 함께 연주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고, 국악관현악 편성에 저음역을 보완해 줄 서양 전통악기가 일부 추가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리모델링 이후 서양 관현악단이 찾아와 본격적인 공연을 여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 3년간 해오름극장이 리모델링 과정에서 가장 섬세히 조정한 것은 바로 음향이었다. 해오름극장의 ‘건축음향 잔향 시간’은 1.35초대에서 1.65초로 이전보다 길어졌고, 또 공연 장르에 따라 음향 잔향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가변식 음향제어’ 장치가 설치되기도 했다.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음향 시스템을 갖춘 해오름극장에서는 전속단체들이 자신에게 꼭 맞는 소리를 찾아 극장과 한 몸이 돼가겠지만, 이곳을 방문한 여러 초대 단체들도 새로운 환경에서 그들의 음향을 실험해 볼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전통악기에 잘 맞는 음향을 깊게 고민하며 리모델링된 지금의 해오름극장과 서양 관현악단은 함께 과연 어떤 울림을 만들어낼까.

‘개화, 피어오르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ㅇㅗㅅㅏㅇㅈㅣ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오상진

연주회의 시작을 알리는 곡은 축제의 활기로 가득 찬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이다. 이 곡은 베를리오즈가 로마에서 열린 카니발을 직접 경험한 뒤 작곡한 곡으로, 축제의 생생한 분위기가 음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베를리오즈는 근대 서양 관현악의 다채로운 음색을 한층 더 끌어올린 관현악법의 대가로, 악기의 고유한 속성을 잘 이해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관현악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오케스트라로 구현하는 찬란한 음색의 향연에 더해, 특별히 ‘로마의 사육제’ 서곡에서는 이탈리아 민속춤인 살타렐로 리듬이 쓰여 흥겨운 분위기를 더한다.

이어지는 곡은 차이콥스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작곡 당시엔 기술적 난도가 높아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바이올린 연주가에게 사랑받는 곡이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을 이탈리아·스위스 여행 도중 작곡했는데, 여행지의 풍경이나 자연에서 창작욕을 끌어냈다기보다는 여행 중에 접한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이 창작의 구체적인 계기였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인 그 곡을 만난 뒤 차이콥스키는 이와 같은 편성의 곡을 열정적으로 써 내려갔고, 러시아 민요풍의 선율을 곳곳에 놓아두었다. 특유의 서정성과 화려한 기교를 선보일 수 있는 이 곡은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가 함께 연주한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부분 중 하나는 2부 첫 순서인 김택수의 ‘더부산조’다. 김택수는 2014~2016년까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상주 작곡가로 활동했는데 그 기간에 마침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위촉을 받게 되어 동시에 전통악기에 대한 연구를 병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통악기와 판소리, 산조의 세계를 파고들던 중 작곡한 것이 바로 ‘더부산조’다. 그는 서양 관현악단의 소리와 가장 이질적이라고 느낀 가야금 산조에 기반해 이 곡을 썼고, 그 둘을 절묘하게 엮기 위한 여러 방편을 고민했다. 김택수는 문묘제례악의 추성과 남도 음악의 퇴성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장구 채편 소리를 내기 위해 첼로나 콘트라베이스에서 줄을 지판에 치는 주법을 썼다. 또 이 곡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전통악기의 음색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서양 전통악기를 섞어서 비슷한 음색을 구현하기도 했다. 김택수는 한국 전통과 서양 전통을 유연하게 다루어 자신을 이루는 정체성, 그리고 한국 근현대 음악사의 풍경을 음악에 담고자 한다. 한 인터뷰에서는 그는 “동양과 서양을 뒤섞으면서도 양쪽에 다 말이 되게 만드는 것. 현재의 목표는 그것”이라고도 말하기도 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이다.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곡은 불새의 도움으로 마왕에게 잡힌 왕녀들을 구출하는 슬라브 민담을 묘사한다. 러시아 구전 민담에 기반한 만큼 다양한 민요 선율이 들려오는 이 곡에서는 스트라빈스키의 화려하고 특징적인 관현악 사운드도 경험할 수 있다. 독특하게 운동하는 리듬과 여러 겹으로 중첩된 화음, 날카롭게 뻗어나가는 관악 사운드와 탄성 좋은 현악 사운드까지. ‘불새 모음곡’에서는 서양 관현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음향층을 매우 다채롭게 체감할 수 있다.

서로의 환경을 경험하는 일
‘개화, 피어오르다’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개화, 피어오르다’ 협연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Sangwook Lee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이번 공연은 해오름극장과의 첫 만남에 걸맞게 설렘과 활력이 가득한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사육제’ 서곡과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한국 전통음악과 근현대 음악에도 깊은 애정을 지닌 작곡가 김택수의 ‘더부산조’,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까지. 코리안심포니는 서양 관현악단의 음색을 풍성하게 들려주는 동시에 서곡·모음곡·산조·협주곡 등 여러 장르를 고루 선보이는 공연을 기획했다. 이번 공연은 새 단장한 해오름극장에 선사하는 일종의 ‘음악 축전’ 같기도 하다.

동시에 이는 앞으로 어떤 가능성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음향 교환의 시간이기도 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한국 전통악기의 음향에 걸맞게 설계된 해오름극장에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서양 관현악단을 위해 쓰인 곡들을 연주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홈그라운드에 찾아와 이곳의 환경과 음향을 긴밀히 경험해 보는 것이다. 전통악기를 위해 음향을 섬세하게 조정해 둔 해오름극장에서 서양 전통악기들은 어떤 소리를 들려주고, 우리는 거기서 또 어떤 신선한 음향을 듣게 될까. 그 교차점에서, 우리는 앞으로 또 새로운 음악의 실마리가 될 매력적인 음향 조각들을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신예슬 음악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동시대 음악에 관한 호기심으로부터 비평적 글쓰기를 시작했다. 음악학을 공부했고, 단행본 ‘음악의 사물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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