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하나

국립국악관현악단 ‘천년의 노래, REBIRTH’ 김성진 예술감독, 우효원 작곡가 인터뷰
새롭게 시작될 해오름, 천년의 역사
앞으로 쌓아갈 천년 역사의 시작점에 서 있다. 1950년 창설, 1973년 남산으로 이전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 개관 45년 만에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2021년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는 첫 공연으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천년의 노래, REBIRTH’를 선보인다

지난 2019년, 김성진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양악과 국악을 모두 공부한 인재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이끄는 점에 많은 이들이 환호를 보냈다. 김성진은 “양악과 국악 두 길이 전혀 다른 길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라고 했다. 앞으로 “젊은 작곡가를 발굴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확보하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후 국립국악관현악단은 해오름극장이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에도 롯데콘서트홀에서 자연음향을 계속 준비해 왔다.

마침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번 재개관 기념공연을 위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아시아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닌 작곡가 나효신, 국립합창단의 전임 작곡가로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합창음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나가는 작곡가 우효원에게 새 레퍼토리를 위촉했다. 작곡가 우효원은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신작 ‘천년의 노래, REBIRTH’ 준비에 한창이다. 해오름극장 환생의 자리를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성진·우효원과 긴 대화를 나눴다.

우효원 작곡가,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왼쪽부터) 우효원 작곡가,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왼쪽부터)

2019년 국립국악관현악단 부임 초창기, 김성진 예술감독은 ‘젊은 작곡가’와 ‘젊은 지휘자’를 발굴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죠. 이후 2년이 지난 지금, 그간 어떠한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나요?

김성진 지금도 끊임없이 작곡가 찾기를 계속하고 있어요. 2019년 ‘3분 관현악’에선 10명의 젊은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했어요. 작년에는 코로나 상황인데도 ‘이음 음악제’에 작곡가가 22명 정도 참여했고요. 50명의 젊은 단원을 선발해 오케스트라 이음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배가 고파요.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서양음악에 비하면 지휘자와 작곡가가 부족한 편이죠.

이번 시즌, ‘천년의 노래, REBIRTH’에 위촉된 우효원 작곡가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가고자 하는 이러한 방향성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우효원 국악 경험이 없는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김성진 감독님이 큰 그림을 그리고 창작의 방향을 넓게 보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효원 작곡가는 오랜 기간 합창음악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동안 인천시립합창단, 국립합창단 전속 작곡가로 활약해 왔는데요.

김성진 우효원 작곡가를 오래전부터 눈여겨봤어요. 특히 합창음악에서 정점을 이룬 작곡가죠. 서양음악 공부를 했을지라도 ‘한국어’라는 동일한 모국어를 써왔기 때문에 우리 음악을 접하면 저절로 배어 들어오는 것이 있을 거예요. 아무리 외국어를 많이 공부해도 결국엔 한국어가 편하듯이…. 그래서 이번 작업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또 다른 부딪힘에서 나오는 가능성을 믿어요.

같은 ‘모국어’를 쓴다는 표현이 재밌습니다. 서양음악을 아무리 공부해도 우리 피에는 한국적인 것이 흐른다는 이야기겠죠?

김성진 우효원 작곡가의 곡을 보니까 그게 보여요. 본인이 어떻게 하더라도 한국적인 것을 벗어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우효원 그동안 합창곡만 20년 정도 작업해 왔는데요. 항상 모토가 ‘한국적인 합창’이었어요. 물론 언어는 라틴어나 한국어 등 다양하게 썼죠. 악기는 국악기를 조금씩 쓰기도 했어요. 음악적인 흐름도 자꾸 한국적인 것에서 찾게 되더라고요. 이처럼 우리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이번에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작업하게 된 점이 저에겐 터닝 포인트입니다.

이번 ‘천년의 노래, REBIRTH’는 해오름극장의 재개관을 기념하는 공연이자, ‘합창’과 ‘국악관현악’의 만남이기에 더욱 기대됩니다.

김성진 오래전부터 기획한 공연이에요. 해오름극장 재개관 공연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국립합창단과 호흡을 맞추는 게 어울릴 것 같았어요. 작사를 고민하다가 이어령 선생을 모시게 됐고요.
우효원 어려운 작업이었죠. 이어령 선생은 고령이고, 암 투병 중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적극적인 추진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지금 새로운 글을 쓰는 건 힘드실 것 같으니 기존 작품들을 재구성하면 어떨지 방향을 잡았어요. 이어령 선생은 연세가 많으신 데도 음악에 대한 통찰력이 정말 깊어요. 그동안 선생님이 쓰신 글들을 큰 맥락으로 놓고, 발췌를 진행했어요. 그걸 다시금 시화해서 가사를 만들었죠. 그 작업 과정에서 선생과 계속 소통했고요. 어떻게 보면 이어령의 ‘자서곡’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말’과 ‘우리 악기’의 친화력

많은 매체에서 우효원 작곡가를 ‘한국적 합창음악을 작곡한다’고 수식합니다. 늘 궁금한 게 바로 이 ‘한국적’이라는 수식어예요. 한국적인 것이 리듬일 수도 있고, 악기를 사용하는 방식일 수도 있고, 방향은 여러 가지일 텐데요.

우효원 저는 소재를 최대한 우리 음악에서 찾으려고 애를 써요. 국악을 전공하진 않았으니 책이나 음반으로 독학하면서 그 안의 요소들을 합창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많이 해왔습니다. 그래서 그런 수식어들이 붙은 것 같아요.

‘한국적 합창’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성진 감독은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작업 중 하나가 ‘합창과의 협업’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이영조 작곡가와 ‘시조 칸타타’를 만들기도 했고요. ‘우리말’과 ‘우리 악기’의 친화력에 대해 우효원 작곡가는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우효원 국악기는 자연과 가장 닮은 악기이고요, 합창은 자연의 목소리를 담았죠. 예전에 제가 국악기를 많이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음정과 악보의 문제에 있는데요.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은 전통을 벗어나는 훈련이 워낙 잘돼 있어요. 새로운 음악을 굉장히 빨리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고요. 계속 창작곡 위주로 연주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번 만남이 아주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국악’과 ‘양악’의 좋은 협업은 무엇일까?

‘시조 칸타타’와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김성진 우리 국악이 조금 더 양악에 다가가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조 칸타타’는 합창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부분이 많았어요. 당시 창원시립합창단과 무대에 올랐는데 우리 시김새나 농현 같은 것을 합창에서 소화했지요. 두 시도가 다 의미 있죠.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두 길을 계속 간다면 더 큰 의미가 생길 것 같아요.

이를 기점으로 앞으로 합창과 국악관현악의 협업이 더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김성진 우리 음악이 ‘구체적으로’ 녹아들 수 있게 더 깊이 파헤쳐야 해요. 한번은 판소리의 한 대목을 합창으로 해보면 어떨까 상상해 봤어요. 단선율로 할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4부 합창,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할 수도 있겠고요. 작곡가의 머리로만 모든 것을 만들기보다는 소재를 가져다 버무려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정제하고 또 정제하는 작업을 하는 게 결국 동시대 국악 작곡가가 해야 하는 일일까요?

김성진 작곡가는 원형을 되새김질하고 충분히 소화해 끄집어냈으면 좋겠어요. 반면 연주자는 원형을 잊어야 하고요. 각각의 위치에서 본인에게 맞추려고 하다 보니 발전하기 힘든 게 아닐까요.
우효원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심지어 외국 사람들도 연주할 수 있는 ‘보편화’를 시도하는 것도 전통의 변형에서 중요한 작업인 것 같아요.

양악과 국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두 장르가 앞으로 잘 만나려면 서로 어떤 부분을 잘 조율해야 할까요?

김성진 양악은 실을 정교하게 짜놓은 것 같은 음악이에요. 어떻게 엮어도 엮일 수 있는 실이라면, 국악은 애초에 모든 실이 다 달라요. 짜 맞추기가 힘들죠. 그렇다고 그걸 서양음악처럼 실을 일정하게 정리해 버리면 맛이 없어요. 그 접점을 찾기가 참 어렵거든요. 각각의 생명력 있는 이 실들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고구마와 피자가 안 어울릴 것 같은데 ‘고구마 피자’로 잘 섞이잖아요.
우효원 덧붙이자면 국악관현악을 들여다보면서 오케스트라처럼 짜 맞추면 안 되는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접근하면 국악기 하나하나의 좋은 것들이 없어지고 하나로 뭉뚱그려질 위험이 있어요. 개개인의 특성을 살리면서 조합한다는 게 어렵지만 또 동시에 무한한 조합의 결과물이 있을 수 있잖아요.

해오름극장이 리모델링하는 동안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을 진행해 왔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돼 기대가 클 것 같은데요. 리모델링된 해오름극장의 음향은 좀 어떤가요?

김성진 단원들은 롯데콘서트홀을 아주 편해하지는 않았어요. 포디움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는데, 단원들은 잘 안 들린다고 합니다. 국악에서는 최적의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는 다이내믹 레벨이 있어요. 근데 그걸 롯데콘서트홀에서는 다 줄여야 하니까 불편함이 있었죠. 해오름극장에서는 롯데콘서트홀의 그 많던 잔향이 사라지니까 마치 안개가 걷히듯이 우리 색깔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해결해야 할 것은 많아졌지만요. 예컨대 작곡가도 곡을 더 정교하게 써야 하죠. 악기마다 들리는 소리의 불균형이 심해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시점에서 안 들리는 악기를 몽땅 몰아서 쓸 수도 없고요. 악기의 배합이나 다이내믹 레벨을 작곡가가 섬세하게 조율해야 할 것 같아요.

이번 공연에서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점은요?

김성진 새 극장에서 연주되는 새 레퍼토리를 들으러 오신 분들이 감동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떨림이 오랫동안 지속돼서 앞으로도 계속 발걸음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효원 개인적으로는 작곡가로서 그동안 해온 합창에서 한발 더 나아간 느낌이 있거든요. 저도 그렇고 국립국악관현악단도 그렇고 이번 작업이 각자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그림이 됐으면 좋겠어요.

글. 장혜선 ‘월간객석’ 기자. 대학에서는 음악을, 대학원에서는 연극을 공부했다. 바른 시선으로 무대를 영원히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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