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상연재

제1회 국립극장 공연예술 평론가상 당선작 요약문
우수상 수상작 : 변영미

평론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국내 공연 분야의 현실 개선을 위해 국립극장은 지난 2021년 제1회 국립극장 공연예술 평론가상 공모사업을 실시했다. 그 결실인 변영미·조순자·장기영 수상자 3인의 당선작 모음집이 최근 공개되었다. 당선작 모음집에서 발췌한 요약문 시리즈를 통해 신인 평론가에 의해 기록된 지난 공연의 추억을 되살려보자.

또 다른 한국인의 초상,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국립극장이 제작한 이 창극은 고선웅이 각색·연출, 한승석 작창으로 국립창극단과 연출, 작창의 앙상블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예술적으로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롱런 작품이다. 신재효가 정리한 실전 판소리인 <변강쇠가>를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다양한 음악을 활용하여 창극의 이면을 잘 그린 작품이다. 먼저 고선웅 연출은 <변강쇠가> 후반부의 강쇠 치상 장면을 과감히 삭제하고 옹녀를 색녀에서 열녀로 변모시킨다. 옹녀는 후반부에서 동티살로 목숨을 잃고 목장승이 된 강쇠를 구하기 위해 장승들과의 전쟁도 불사하는 영웅으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불모의 땅이었던 옹녀는 생명을 잉태하게 되자 강쇠 따라 장승 되기를 포기하고 인간계에 남아 일부종사를 맹세한다.
고선웅은 오마주와 패러디를 통해 극적 재미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잔 다르크와 리시스트라테를 아우르며 에로물까지 패러디하며 웃음을 선사하는 고선웅은 음지에 있던 혐오와 공포의 대상을 양지로 소환하여 밝은 웃음으로 대체시킨다. 연출의 극적 의도에 맞춰 음악의 이면을 그린 한승석은 수성가락과 조의 변화, 다채로운 반주를 통해 극 분위기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무대와 컴퓨터그래픽도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다양한 문양과 색을 채워 넣으니 <변강쇠 점 찍고 옹녀>의 무대는 웃음과 음악과 노래와 그림이 빼곡하게 가득 찬 무대가 되었다.
다만 이 작품에서 아쉬운 점은 고선웅이 열녀 영웅 옹녀를 창조한 뒤 해피엔드로 서둘러 마침표를 찍고 극 구성을 종결하고자 한 점이다. 관객들은 때로 소리 가운데 고요를, 움직임 가운데 부동을 느끼며 삶을 명상하며 극장을 나가며 삶 속으로 그것을 확장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2016년의 고선웅 공연인 <한국인의 초상>의 또 다른 이름이 된다.

‘제5의 벽’ 앞에서 우리는 준비가 되었는가,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자 연출 구자혜가 이번에는 텍스트 해체와 발화 방식의 해체를 통해 문제작을 선보였다.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로드킬 당한 야생동물들과 인류의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희생 당해온 실험동물들, 유리벽에 부딪혀 죽어가는 새들, 성화봉송을 장식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불에 타 죽은 비둘기들 등에 얽힌 동물권 문제를 다룬다.
연출과 배우들은 우선 텍스트를 해체하여 추상적이고 맥락 연결이 끊긴 문장과 발화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불편한 지점을 선사한다. 그들이 의도한 바는 자신들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하는 배우라는 지점을 실천하고 실험하는 것이다.
또한 배리어프리 공연으로서 자막, 음성해설, 개방형 음성해설, 수어통역을 배치하여 수많은 언어를 무대 위에 배치한다. 그리고 무대의 경계를 극장에서 극장 밖으로 밀어내며 우주로까지 광대하게 확장시키고자 한다. 그 의도는 소리 디자인과 조명 디자인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한 가지 걸리는 지점은 배우들이 큰 소리로 계속 발화하면서 목을 다쳐 심히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역과 자신 사이에서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듯 자신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발화하는 방식을 탐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어통역사의 통역은 건강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배우들의 발화를 통역하여 농인들이 문화를 향수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의지를 관철시킨다.
뉴노멀과 온라인 공연 시대를 맞아 우리는 다양한 매체와 새롭게 생겨나는 공간을 경험하지만 여전히 편가르기의 골은 깊어만 간다. 이전 프로시니엄 무대가 제4의 벽을 창조했다면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경계를 제5의 벽으로 칭하자. 그 벽 앞에서 벽을 허물지, 견고히 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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