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보기

지휘자 양성에 관한 제언
지휘자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지휘자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까.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포디엄에 오르기 어려운 구조적 섭리를 견뎌야 하는 지휘자의 마음. 포디엄에 선 지휘자는 수많은 단원의 눈빛을 마음에 담아 하나의 위대한 순간을 만든다. 그 감동을 가득 안고 무대에서 내려와 다음 무대를 꿈꾼다. 반짝일 어느 날의 순간을 향해 어제도 지금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기다릴 것이다. 이것이 지휘자의 길이라 굳게 믿는 그들에게 깊고 따듯한 박수를 보내야 하는 까닭이다.

21세기 예술가들의 고용 불안정

예술가들의 고용불안은 예술가들이 생겨났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자 예술의 역사다. 물론 시대에 따라 태어난 계층에 따라 고용에 관계없이 편하게 예술 활동을 한 예술가들도 있었다. 16세기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Frederick the Great, 1712~1786)은 여러 음악가를 고용하고 후원하던 보통의 왕들과 달랐다. 직접 음악을 배우고, 연주했고, 여러 편의 작품을 작곡해 남긴 예술가이자 진짜 음악가였다. 왕이라는 직업을 가진 동시에 음악가로 불리기에 손색없는 삶을 살았다.

화가 아돌프 멘젤 작 <상수시의 플루트 연주회>(1852) 1747년 포츠담의 상수시(Sanssouci) 궁전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플루트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셋째 아들인 C.P.E 바흐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왕의 플루트 교사인 요한 요아킴 콴츠가 오른쪽, 바이올린을 든 남자는 궁정 음악가 프란츠 벤다 등이다. ⓒ위키피디아

하지만 분명 한겨울 추운 날씨에 언 발을 녹이며 그림을 그린 화가가 더 많았다. 돈을 벌기 위해 귀족이 요구한 작곡 양식에 맞춰 작곡하는 음악가들이 일반적이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의 어려운 생활환경을 이유로 헨델과 슈베르트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전문 음악가의 길을 권유하지 않았다. 예술가의 불안정한 상황을 염려해, 아버지의 마음으로 안정적인 월급을 받고 일할 수 있는 변호사·교사·은행원 같은 직업을 갖길 바랐다. 하지만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식이 있던가. 헨델과 슈베르트는 서양 음악사를 빛낸 위인으로 살다 죽었다. 헨델은 꽤 많은 재산을 남겼지만, 슈베르트는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숨을 거뒀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음악가로 산 것을 후회하지 않았을 테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겪었던 안타까운 현실도 현실이지만, 더 안타까운 점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예술 활동을 이어가는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21세기의 예술가들도 18세기의 예술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근무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여러 예술가 중에서 특히 지휘자가 그렇다.

ⓒ픽사베이

지휘자는 어떻게 지휘자가 될까

단 한 개뿐인 포디엄은 음악의 구조적 섭리다. 100명의 연주자가 모인 오케스트라든, 50명의 성악가가 모인 합창단이든 어느 무대이든 지휘자는 단 1명뿐이니까. 애써 강조하지 않아도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지휘자의 자리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어려운 구조적 환경에서 지휘자는 어떻게 탄생할까?
지휘자도 기악·성악 연주자가 데뷔하고, 연주 활동이나 기타 음악 관련 활동을 시작하는 것처럼 경력을 쌓아 나간다. 다른 연주자들의 정규 학업 과정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학사 과정부터 지휘를 전공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는 점이다. 불과 10~20년 전까지만 해도 바이올린·성악·작곡·피아노 등 지휘가 아닌 전공을 공부한 연주자들이 차츰 지휘에 흥미를 느껴 이를테면 석사 혹은 박사 과정에서 지휘를 공부해 지휘자가 되는 길에 들어서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학부부터 지휘 전공을 선택하는 미래의 지휘자가 많다.
지휘 공부를 마친 이후에는 담당 교수의 추천을 통해 지역 오케스트라 등에서 어시스턴트 지휘자의 개념으로 연습에 참관하기도 하고, 영화처럼 공연 당일 지휘자의 대타로 무대에 데뷔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또 크고 작은 연주 단체와 음반 녹음 작업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어느 정도 지휘자로 경력을 쌓다가 특정 오케스트라와 시즌별 계약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굉장한 행운이라고 표현해도 괜찮지 않나 싶다. 지휘자의 실력이 말할 것도 없이 완벽할지라도 말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 프로젝트’에 선발된 차세대 지휘자 유숭산·이재훈·정예지는 지휘자 멘토들의 밀착 조언을 받으며 프로 지휘자로 익혀야 할 것들을 배웠다. 그간 세 사람이 쌓은 결실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정오의 음악회>에서 펼쳐지고 있다.

또한 기악·성악 연주자들과 불가피하게 비교해 본다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과정보다 지휘자가 되는 과정이 솔직히 조금 더 어렵다. 가령 플루트 연주자와 지휘자가 오케스트라에 취직할 수 있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보통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연주자 정원은 1명에서 2명 사이다. 그들이 별문제 없이 정년까지 근무한다면, 그 오케스트라의 플루트 연주자 채용은 20~30년간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지휘자의 경우 1년 혹은 2년의 시즌제 계약이 일반적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물론 그 기간보다 더 길게 계약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지휘자가 30년씩 한 단체를 이끄는 경우는 드물다. 한 오케스트라와의 시즌 계약이 끝나면 또 다른 연주 단체와 연주를 이어가야만 한다. 이 또한 기다림의 끝에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기회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휘 콩쿠르 수상은 지휘자로 활동을 앞둔 지휘학도에게 굉장한 동력이 된다. 지도교수의 추천보다 빠르고 정확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개최되는 모든 국제 지휘 콩쿠르의 가장 큰 장점은 수상자에게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데뷔할 기회, 오케스트라와 계약할 기회, 기타 지휘자로 포디엄에 오를 기회를 수상 선물로 준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지휘학도들은 지휘 콩쿠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 지휘 콩쿠르 수상자들의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지난해 12월 ‘가치 만드는 국립극장’을 목표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시작한 프로젝트 ‘지휘자 프로젝트’도 차세대 지휘자를 위한 알차고 뜻깊은 결실을 거두었다. 심사를 통해 유숭산·이재훈·정예지 지휘자가 선발되었다. 특히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지휘자 멘토들의 밀착 조언 등을 통해 세 사람의 지휘자는 프로 지휘자의 다양한 면모를 익힐 수 있었다. 그 결과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약속된 무대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정오의 음악회> 포디엄에 오를 수 있게 됐다. 경력이 없어 경력을 쌓지 못하는 젊은 지휘자에게 이 프로젝트가 오래도록 자리해 힘이 돼주길 바란다.

젊은 지휘자를 위한 국제 지휘 콩쿠르 셋

브장송 콩쿠르
프랑스 문화부가 후원하는 브장송 지휘 콩쿠르는 1952년 첫 회를 시작으로 내년 58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수상자들에게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 기획사와 계약할 기회, 음반 녹음 지휘 계약 등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게오르크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
195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게오르크 솔티 경을 추앙하기 위해 설립된 콩쿠르다. 재미있는 점은 이 콩쿠르에서 청중상을 수상하면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우승 기념 무대에서 게오르크 솔티 경의 지휘봉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콩쿠르 수상자에게는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및 박물관 오케스트라와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가 주어진다.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
독일의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젊은 지휘자의 지휘 경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국제 지휘 콩쿠르다. 구스타프 말러의 손녀 마리나 말러의 후원으로 3년마다 개최되는 권위 있는 콩쿠르다. 수상자들은 정해진 상금과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회, 계약의 기회도 제공받는다.

글. 정은주 음악 칼럼니스트. 서양 음악가들의 음악 외적 이야기를 발굴·소개한다. 카카오페이지가 주최한 신인 작가 프로젝트 ‘넥스트페이지’ 2기 지적 즐거움 부문 선정작가(2020)로, 네이버 및 각종 매체와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월간지, 『월간 조선』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추명희·정은주 공저), 『나를 위한 예술가의 인생 수업』을 썼다.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클래스101’에서 <클래식 음악가의 비하인드>를 발표했고, 부산MBC <안희성의 가정 음악실>에 출연하고 있다. 영국 현악 전문지 『스트라드』 한국판, 여행 전문지 『더 트래블러』에서 에디터로 일했고, 청소년 문학 앤솔러지와 예술 교양서 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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